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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좌담] 제주 지역 장애예술 지형 제주 바당처럼 푸르고 힘차게

  • 김현미·민경언·이은주·이진희 
  • 등록일 2025-02-26
  • 조회수 42

이슈

지역의 필요를 바탕으로, 지역을 삶과 예술의 터전으로 삼는 장애예술은 어떻게 가능할까. 제주 지역의 장애예술 지형을 살펴보고 현장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기획자로, 매개자로 활동하는 세 분과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이 만났다. 제주 지역 장애예술의 현안은 무엇이며, 장애예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개요

  • 일시2025년 2월 7일 오후 3시

  • 장소삼달다방

  • 참석자 김현미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 문화예술팀장
    민경언 커뮤니티아트랩 코지 대표
    이은주 이마고미술치료연구소 소장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좌장)

  • 높은 원목책장과 파란색 커튼을 배경으로 네 사람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은주 소장과 김현미 팀장은 이마고의 창작자들이 그린 책 두 권씩을 양손으로 들고 있고, 이진희 위원은 한 손에 천혜향을, 민경언 대표는 알록달록 삼색으로 칠한 기타를 품에 안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주 소장, 김현미 팀장, 이진희 기획위원, 민경언 대표

이진희어제와 오늘 날씨가 굉장했다. 제주도에서 1년에 한두 번 있을 기상 악화 상황에 걱정했는데, 눈보라를 뚫고 와주셔서 감사하다. 다들 무사히 오셔서 정말 다행이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장애예술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민경언연출 작업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서귀포온성학교에서 계절학기 연극강사로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장애 당사자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저는 예술이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2016년 제주장애인문화예술센터에서 뮤지컬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예술 작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예술창작 활동을 하며 장애예술인을 발굴하고, 예술이 삶을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는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은주서울에서 서양화 작업을 하고 미술치료 상담을 하다가 2012년에 제주에 내려왔고, 2015년부터 이마고미술치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로 서귀포에 있는 ‘아르브뤼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었는데, 정신장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였고, 이런 장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2016년에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아르브뤼 미술전을 하면서, 장애예술, 특히 그들의 조형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시회를 찾아온 장애아동 부모 중에 자기 아이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분들이 있었고, 그렇게 연결된 분들을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서귀포시장애인복지관과도 같이 일하게 되었다. 이마고는 초반에는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시작했다가 발달장애인 창・제작으로 확장해 작가 양성도 하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김현미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6년째 문화예술팀장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그 계기로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문화예술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을 장애인 복지 현장에 접목해 보고 싶어 문화예술대학원에 들어갔고, 문화기획을 전공하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관련 논문도 준비했다. 당시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문화예술 관련한 일을 하면서 좀 더 풀어보고 싶었고, 장애인복지관으로 이직하면서 문화예술팀이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그러다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와 일하면서 미련이 있던 차에,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문화예술팀을 만들며 제게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주셨다. 고향에서 못다 핀 꽃을 한번 피워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다. (웃음) 기관에서도 문화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루고자 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서 다양한 사업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삶을 이해하고 실체를 밝히는

이진희말씀을 들어보니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보이는 것 같다. 예술을 통한 공동체의 기여를 고민할 때 왜 장애였을까, 장애예술 작품을 보고 어떤 점이 영감으로 다가왔는지,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있다가 문화예술을 접목해 보려는 갈증은 왜 생겼는지, 좀 더 이야기를 들려 달라.

민경언살면서 어떤 장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예전에는 배우로도 활동했는데, 연축성 발성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일을 내려놓기도 했다. 나의 삶이 장애 요소로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삶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이해하다 보니 장애예술과 만나게 되었다. 장애・비장애를 떠나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장애라 불리는 실체 없는 장벽을 한번 예술을 통해서 넘어보고자 했고, 그 장벽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누구나 장애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인식 때문에 생기는 혐오, 수치심, 그리고 그것들을 가리고자 하는 본능적인 충동, 저는 이게 핵심이라고 본다. 장애 유무, 장애 유형을 떠나서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그 지점을 넘기까지의 단계, 그리고 그 단계를 넘어서 창작자 또는 한 개인이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을 옆에서 함께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은주저는 특별히 장애예술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장애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반 농담처럼, 설문대 할망이 장애인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잘 놀아보라고 나를 제주도로 이끄셨나 싶다. 서양화 작업을 하면서 늘 새롭고 개념적인 작업,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다. 그런 시기에 장애인 작가들의 작업을 보며 너무 신선하고 한 방에 뭔가 날려버리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르브뤼미술관에서 본 주영애 작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4절 종이를 이어 붙여 오로지 크레파스만으로 여자 등신상을 그려냈는데, 에너지가 폭발적이었다. 전시장에서도 아우라가 엄청났다. 우리는 창작의 원천을 무의식에서 많이 찾는데, 그 작가의 즉각적이고 즉물적인 형태의 작업이 신선했다. 기존 제도권에 별로 재미를 못 느끼고 대안적인 형태의 전시를 찾아 돌아다니곤 했는데, 이들 또한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이들과 작업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다.

김현미제가 처음에 장애 영역을 선택한 이유는, 그냥 자라온 환경 자체가 그랬던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이웃에 사는 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그들이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나들이 하나도 자원봉사자를 대동해서 “우리 나들이 가요” 티 내고 갔다. 마음속으로 수많은 질문이 들었지만, 그냥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문화예술 향유 권리에 대해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지 않나. 제주도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다양한 문화생활을 접하면서 더 큰 간극을 느꼈다. 게다가 장애 영역에서는 문화 영역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문화 영역에서는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래서 최소한의 접근성이나 장애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누군가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장애 당사자들이 기획에 참여하고 함께하면서,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서의 만족과 행복감이 폭발적으로 나오는 걸 봤다.

  • 김현미 팀장

    김현미 팀장

  • 이은주 소장

    이은주 소장

  • 민경언 대표

    민경언 대표

  • 이진희 기획위원

    이진희 기획위원

인권과 예술 사이의 교차점에서

이진희인권과 예술 사이에서 이것을 연결할 교차적 존재가 필요한데, 이런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대부분 장애인은 예술교육에 접근하기 어렵고, 주로 시작하는 곳이 복지관이나 장애인 시설이다. 제주 지역 장애인의 인권이나 삶이 장애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가 만들어진 지 올해로 22년이 되었는데, 초창기에 제가 가장 많이 했던 게 배우들 활동 지원하러 가는 거였다. 장애여성 배우들은 2시간 공연 연습을 위해 6시간을 써야 한다. 활동지원 제도와 장애인 콜택시가 생기고 지하철 이동도 좀 나아져 배우들이 과거보다 자유롭게 이동하는 환경이 되니 연습 시간도 늘어나고, 자기표현이나 주도권도 인권 현실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김현미제주도는 한라산을 기준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뉜다. 서울에서는 1시간 이동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제주도는 이동 자체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 서귀포시에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제주시에서 넘어올 생각을 안 한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을 넘어간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그렇게 보면 제주도의 장애인·장애예술 활동에서 제일 힘든 부분은 이동권, 접근성인 것 같다. 버스도 많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이동하려면 개인 차량이 필요하다. 특장차도 거의 없고, 필요하면 이동지원센터를 통해서 지원받아야 한다. 우리 복지관도 서귀포시 외곽에 있어서 대중교통이 많지 않고, 셔틀버스도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편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 시스템을 만들더라도 장애인이 올 수 없다면 가치가 없는 거다. 저는 여기서 6년 동안 일하면서 공간에 대한 숙제를 계속 안고 있다. 장애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거점 지역에 창작공간이 생기고 보다 자유로운 접근과 이동 안에서 예술 활동이 이뤄졌으면 한다.

이은주우리는 발달장애인과 주로 작업하니, 그들이 공간에 와서 참여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경험했다. 가족이나 활동지원사가 자차로 이동해서 프로그램 장소에 데려다준다든가, 뇌병변장애가 있는 참여자의 경우 사회복지 담당자가 현장에 데리고 오기도 한다. 7, 8년 동안 만나온 이들은 스스로 콜택시 앱을 설치해서 이동에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동 자체가 힘들고 본인을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때는 접근성이 용이한 형태로 만들어서 예술 활동에 오더라. 그건 많이 달라진 점이다.

민경언장애예술은 사상이나 인권의 진보와 맥이 닿아 있다. 그런 지점에서 봤을 때 장애 당사자가 예술을 처음 접하는 환경이 좋으냐는 질문에, 다들 아니라고 말할 거다. 김현미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기관이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환경에서 예술을 접하다 보니 동원의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된다. 이런 상황은 예술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게 만든다. 이런 환경들이 변화하기 전에는 예술을 예술로 만나는 것이 어려운 지점이 있다. 아무래도 제주가 섬이라는 지형적인 한계로 폐쇄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장애 관련 지원사업 컨설팅에 참여하며 기관에 나가서 보면, 사업 중심에서 참여자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기는 하다. 예술교육 방식이나 과정을 통해 장애 당사자들이 자기만의 예술관이나 자기 결정권을 많이 늘려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제주에서 오랫동안 예술 활동을 해온 장애예술인들도 억압적인 상황 속에 놓여 있어서 갈등이 많으시다.

김현미이주민과 원주민 간에도 차이가 많다. 육지에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나 문화예술 향유 경험이 많은 이들은 제주에는 왜 이런 게 없냐고 하면서 예술 활동에 적극적이다. 제주도 원주민은 이동부터 끝나고 돌아오는 데까지 모든 서비스가 다 이루어져야 참여가 가능한 구조라 대부분 관심이 크지 않지만, 그래도 많이 바뀌었다.

이은주근데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은 조금 양상이 다른 것 같다. 특히 이번 정부에서는 시각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전시 행사도 활발했다. 우리도 작년에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업해서 도의회와 교육청에 작품도 판매했다. 각종 공모전에서 성과가 있다 보니 부모들도 기대가 높아졌다. 안 좋은 영향이라면, 예술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거다. 그러나 다행히 현재 함께 하고 있는 작가들과 부모님들은 환상을 갖고 접근하는 게 아니다. 예술로 돈 벌자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가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도 긍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민경언롤모델이 있는 건 정말 좋은 것 같다.

이진희자기 미래를 생각할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델이 다양할수록 좋다. 그래야 지금의 삶이 덜 불안할 수 있다. 그런 롤모델을 따라가며 성공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망하거나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얻는 성취가 있다. 장애인에게는 실패할 권리도 그동안 차단되어 있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지원제도와 정책

이진희시설에 거주하는 분들은 활동지원사 배치가 안 된다. 그러니 밖으로 나오려면 시설의 복지사가 동행해야 하는데, 선택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나와서 지원받고 이동하는 것 자체가 접근성을 확보하는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공공지원이 늘어나야 하는 건 명확한데, 이런 전제가 빠진 상태에서 프로그램비만 지원했을 때 안정적인 기획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제주도처럼 동서남북 횡단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폴리시랩 프로젝트도 했고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도 해오고 있는데, 이런 공공지원이 장애예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민경언아무래도 공식적인 지원 형식을 띠고 있었기에 참여자들도 지원받는 것에 긍정적이었고, 컨설팅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행정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지원 시스템 안으로 예술이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예술의 본령보다는 지원사업의 취지에 맞춰가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꼭 장애예술만의 얘기도 아니다. 그리고 지원이라는 게 되게 달콤하잖나. 꼭 필요하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건데, 불필요한 반예술적인 것들이 이 안에서 촉발되는 것 같다. 오히려 살아있는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무뎌질 수 있다.

이은주지원정책이나 지원사업을 포함해 공적 자금은 운신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그러한 지원과 장애예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해나가면 속도는 더딜지언정 지형을 형성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지원은 중단될 수 있고 변경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목표를 겨냥해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장애예술가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세월이 더해지는 건데, 정책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은 빨리 성과를 보이기를 요구한다. 그래도 안에서 보니 주변이 달라지고 있었다. 장애 당사자 자신도 성장할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와 시선도 달라졌다. 이들이 좀 더 탄탄하게 연결되어 지역에서 연대해 나간다면 장애예술의 지형도 바뀔 거로 생각한다. 이건 우리가 운동 사조를 만들거나 캠페인을 한 게 아니다. 꾸준히 기관, 예술가들과 함께 연대해서 만들어간 거다. 이제는 변화의 흐름이 느껴지고 보인다.

민경언우리는 개별성 고유성이 자신에게 원래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데, 자신의 고유성과 마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거기까지 나아가는 단계에서 많은 좌절과 실패를 발견하는 건데, 그것들이 너무 쉽게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 위에서 뭔가 내뱉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연극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아닌 거다. 발달장애 창작자들의 그림이 신선하고 비장애인들은 전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이미 우리가 제도권에서 배울 수 있는 교육을 내재적으로 초월해서 거기에 갔다고 본다. 단지 그것을 언어 체계로 환원하기 어려울 뿐이지, 내적인 충동으로 거기까지 갔던 거다. 그런 지점에서 봤을 때 공연이라는 장르가 가진 한계점이 존재하고 개별 예술인들 또한 아직은 딛어야 할 단계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은주제주 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이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무용 수업을 했었다. 어떻게 보면 무용도 정형화될 수 있고, 한 사람의 몸짓이 강조될 수도 있잖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상동행동이나 틱 같은 강박행동이 있는데, 이들의 특성을 무용 동작으로 연결한 거다. 미술과 무용에서는 고유성의 발현, 개인의 몸짓이 개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가능했다.

김현미복지관은 기본적으로 정부 지원이 있고 필요하면 공공자원을 통해서 지원받을 수 있어서 예산에서 좀 더 안정적인 측면은 있다. 외부 지원을 통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고 역량을 높이는 기반을 갖출 수도 있다. 아쉬운 것은, 외부 자원은 대부분 프로젝트 형태이고 연속성을 가질 수 없다는 거다.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연속 지원을 받기 어렵다. 아카데미 프로그램도 잘 해왔지만, 연속 지원이 안 되어 자체적으로 이어가는 과정에서 예산과 인사이동 등 상황이 바뀌면서 부득이하게 중단되었다. 또한, 장애인 복지 영역에서 문화예술 사업을 하려면 행정적으로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 복지 영역에서는 자원 연결이나 재능 기부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연습과 공연을 하려면 편곡비를 쓸 경우도 있고 장소 대관도 필요한데, 이런 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우리가 2019년부터 예술꿈나무육성사업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데, 소규모 인원이 참여하고, 인건비, 재료비 예산이 많이 든다. 그런데 복지 쪽에서는 적은 예산으로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를 원하다 보니,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직접 성과를 보면 지원해줘야겠다는 인식이 생길까 싶어 5주년을 맞이하여 도의회, 도청, 교육청 다 초대하여 성과공유회를 열었다. 그래서 올해 깎였던 예산이 다시 복구되었다. 우리가 지원 필요성을 어필하고 제안하는 것도 있지만, 지원기관 담당자가 자주 바뀌니 사업 이해도를 높이기 쉽지 않다. 재단에 공모사업을 내는 경우에도 심사위원의 장애에 대한 이해가 정말 중요하다.

민경언우리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예술공간 이아에 입주해 공간 지원을 받고 있고, 예산은 기업 지원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간에 있어서 장애예술가들도 안정감과 자긍심을 느낀다. 무엇보다 장애예술가들이 공공 창작공간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전까지 없었던 문화가 이제 생겨난 거니까. 그전에 비장애 작가들만 레지던시를 하고 있었을 때는 장애·장애인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장애인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마주치면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점차 익숙해지고 서로의 소통방식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쓰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소소한 변화들이 가장 보수적인 공공기관에서 시작이 된다는 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제주도 내 장애예술인·단체와 기관이 각자 활동하고 있어서 서로 알 수 없었는데, 소통 기회를 확대해야 하는 당위성을 재단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고 담론도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2023년 12월에 ‘제1회 제주장애예술축제-턴(turn)’을 개최하게 되었다. 2024년에도 연속 지원되고 긍정적인 반향도 있어 장애예술축제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창작공간에 장애예술인이 입주해 있으면 공공기관도 함께 협력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일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

이은주 민경언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 제주도에 이음센터와 같은 분원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거점 공간이 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의미가 있다.

민경언2019년부터 시작된 폴리시랩 프로젝트가 2021년에 마무리되면서 사업의 취지가 연장되지 못했다. 마지막 연구에 참여했었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제주문화예술재단에 폴리시랩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제안했고, 2022년부터 예술공간 이아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으로 공간 지원을 받은 장애예술가 랩 ‘두번째집’이 조성되었다. 폴리시랩을 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거다. 장애예술축제 ‘TURN’도 ‘두번째집’을 기반으로 기획·진행되었다. 지금도 재단과 제안하고 논의하며 균형점을 맞춰가는 중이다.

김현미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장문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성 사업도 흥미로운 게 많았다. 처음에는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신청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제한이 풀려 도전해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

이은주모든 사회복지기관의 담당자들이 이렇게 적극적이지는 않다. (웃음)

도약하는 한 해를 기대하며

이진희우리가 앞서 인권 현실 얘기도 했지만, 제주라는 사회와 환경이 장애예술인의 창작 과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민경언중요한 이야기다. 수도권은 기회도 많고 수월성 측면도 훨씬 강화되어 있다. 작품이 상업적으로 팔릴 기회도 많고. 반면 제주도는 예술작업이 상업적인 소비의 측면보다는 삶의 동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거나 공동체 내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존재 방식일 수 있다. 그런 지점에서, 이러한 삶의 방식과 문화가 예술의 본질과 가까워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제주는 아무래도 60만 명 정도의 적은 인구이고 전통적인 공통체가 아직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예술이 지역과 삶의 자리에 스며들 수 있도록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제주는 입소문 같은 아날로그한 소통방식이 온라인 소통방식보다 효과가 더 크다.

김현미지역적으로 제일 아쉬운 것은 일자리에 대한 부분이다. 제주도가 워낙 지역적 특성이 있다 보니 일자리가 많지 않다. 지금 육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장애인 일자리, 예술 일자리가 공공 일자리부터 시작해서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반면에 제주도는 장애인 일자리 지원은 있지만, 예술 일자리로 확장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예술 활동으로만 그치지 않고 일자리 창출과도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조적인 문제, 환경적인 문제들이 제주도라는 특성 때문에 더 많이 갇혀 있는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 계속 공간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취업하려면 그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이 공간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들을 매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이런 기반과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이진희어제 만난 제주 1세대 연극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들에게, 제주도에는 좋은 자연이 많고 그 자연을 꼭 가서 보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정작 휠체어를 타서 못 가는 데가 많다더라. 그런데 자신만의 오솔길을 알고 있고, 마음에도 그런 오솔길이 있다고 하셨다. 자연과 가깝게 사는 것이 그분에게 중요한 자기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지에서 제주로 오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얘기도 마음에 남는다. 지역 간 격차가 크다는 얘기겠다. 이게 유리한 것도 있고 불리한 것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인사이트가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육지에서도 차별이 심각하고, 제주가 변방이기에 부족한 게 있지만, 또 예술 영역에서 강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이은주그림 그리는 이들에게는 나고 자란 이곳의 환경이 그림 소재로 그냥 자연스럽게 툭툭 나올 때가 많다. 우리 발달장애 창작자 중 한 명은 쉬는 날이나 주말이면 공용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 곳을 찍는다. 표선이든, 서귀포든, 차귀도든. 그러고선 버스를 타고 가면서 풍경을 그린다. 그렇게 그림으로 제주를 기록한 것을 스크랩하는데, 파일철이 엄청 많다. 꾸준히 자신의 환경, 제주의 자연을 담는 거다. 자연스럽게 말이 등장하고, 해녀가 등장하고, 바당이 나온다.

이진희제주의 자연은 천혜의 자원이자 예술의 영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올해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씀해 달라. 미래에 도달하고 싶은 목표도 좋다.

김현미제가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복지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예술 영역에서 다양하게 연계되고 연결되는 것이다. 작년에 우리의 공연과 전시를 보고 기획전시를 해보자고 제안해 준 곳도 있고, 4월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기획공연에도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가 했던 아트마켓이나 예술제를 통해 공공기관에서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고, 연계해 아트상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되게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이런 성과를 좀 더 알리고 제주 지역 장애인 문화예술의 현황과 방향을 나누기 위해 올해 8월에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우리 복지관에서는 생애 주기별 교육 시스템을 갖추려 한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예술학교부터 성인 대상의 아카데미 또는 예술대학. 그리고 예술꿈나무사업을 통해 장애예술인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단계를 만들고, 일자리까지 연결될 수 있는 구조로 확대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리고 기존에 했던 아트마켓 사업을 올해 아트페어 사업으로 크게 해보려는 꿈을 갖고 재밌는 구상으로 제안해 봤는데,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정말 좋겠다.

이은주발달장애 창작자의 창작 프로세스 개발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 창작자들이 성장해서 2, 30대가 되었는데, 요즘 세대여서 미디어에 빠르다. 그래서 멘토 예술가가 옆에서 협업자로서 존재했던 역할을 챗GPT 같은 AI가 대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사조에 다다이즘이라는 게 있다. 발달장애 창작자들의 그림을 보면 자동기술 기법처럼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것들이 툭툭 나온다. 스스로 개연성 있게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AI의 도움을 받아서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생각이나 단어들을 쭉 프롬프트로 작성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계속 선택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장애예술가가 수월성의 문제에서 접근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꼭 장애예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통합 예술학교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대학이라기보다는 대안적인 예술대학 같은. 제주도에서는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경언올해 1세대 장애예술인들의 시각예술 활동을 조명하는 전시 기획을 해보려 한다. 아무런 기반 없이도 예술 활동을 해 온 그분들을 조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애예술가랩 두번째집에서 예술창작 활동을 하는 장애예술인들과 3월에 공유전을 준비하고 있다. 참여자들의 자기 본질이 지향하는 지점과 그 존재의 발현을 제한하고 있는 반예술적인 환경들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제주문화예술재단과 기획하는 ‘제3회 장애예술축제-턴(TURN)’이 기다리고 있다.

이진희 세 분의 계획을 들으니, 저도 올해 좀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몽글몽글 힘이 나는 것 같다. 긴 시간 깊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 가로로 긴 빨간색 프레임의 창문과 이어진 원목 데크에 네 사람이 나란히 걸터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이은주 소장, 김현미 팀장, 민경언 대표, 이진희 기획위원

김현미

김현미

사회복지사, 문화기획자.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기획을 공부했다.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문화예술팀장으로 일하며 꿈나무육성지원사업, 창작지원사업, 예술학교 등 장애 아동·청소년·성인의 예술활동과 창작지원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문화예술 활성화와 문화향유를 위해 공연·전시·공모 사업을 지원하고, 격년으로 예술제와 아트마켓을 진행해오고 있다. 성장 기반, 수익창출, 교육체계 구축, 전문 창작공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다.
jejuableart2600@daum.net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

민경언

민경언

전방위 연출가, 커뮤니티아트랩 KOJI(코지) 대표. 예술공간 이아에서 장애예술가랩 ‘두번째집’을 통해 장애예술가 인큐베이팅을 위한 교육과 장애예술인 발굴, 기성 장애예술인 창작작업 지원을 하고 있다. 제주문화재단과 함께 ‘2021 제주 장애예술 창작기반 구축사업 : 폴리시랩 프로젝트’, ‘2023 장애예술축제-턴’을 기획·제작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예술창작아카데미 창작자 과정 ‘감각과 초월’ 시즌1(2023), 시즌2(2024)를 기획·연출했다.
min6313@hanmail.net
∙ 커뮤니티아트랩 코지 홈페이지

이은주

이은주

미술작가, 이마고미술치료연구소 소장. 전문미술치료사 양성과 교육, 상담, 치료와 모든 연령층의 전인적 성장과 예술향유에 관심을 두고 문화예술교육사업을 한다. 통합예술놀이, 그림자극, 장애예술 분야에서 활동한다. 발달장애 작가들의 조형 언어를 발견하는 일과 치유의 메시지로서 예술로 소통하고 있다. 발달장애 청년작가 6인전 《제주에이블아트 : 유니크한 그들이 온다》(2023) 등을 개최했다.
maumlee@naver.com
∙ 이마고미술치료연구소 인스타그램

이진희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부터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wdc214@gmail.com
∙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제작PD suna.choe@gmail.com
사진. 전진호 사진작가 0162729624@hanmail.net

2025년 3월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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