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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장애 예술인 창작역량을 지원하는 해외 사례 아웃사이더에서 주류의 가장자리로

  • 이보람 장애 예술 연구자
  • 등록일 2020-11-25
  • 조회수 672

트렌드리포트

장애 예술인 창작역량을 지원하는 해외 사례

아웃사이더에서 주류의 가장자리로

이보람 장애 예술 연구자

예술인은 누구인가

1980년 유네스코(UNESCO) 「예술인 지위에 관한 권고(Recommendation Concerning the Status of the Artist)」에 따르면 누구나 ‘자기평가(self-assessment)’에 따라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하지만 ‘전문 예술인’의 ‘전문성’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반영한다(Jeffri & Throsby, 1994).

⑴ 수입 창출 : 예술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수입이 시장에서 창출되고 있는가
⑵ 공식 교육 : 예술 훈련 결과 혹은 전문 단체 공식 회원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⑶ 예술 직업 : 예술을 본업으로 삼고 본인 스스로 그리고 동료들에게 예술인으로 인식되어 있는가

이 조건에 따르면, 학습장애 또는 발달장애 예술인이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본질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공식 교육을 받는 데 어려움이 따를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 활동을 수익 창출로 연결하고 예술계에서 전문 예술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복잡하고 모호한 과정들 때문이다. 장애·비장애를 떠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대미술 시장의 규모가 방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시각 예술인만이 작품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대다수가 재정적 보상을 작품 활동의 주된 동기로 생각하지 않으며, 종종 예술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며 개인 작품 활동을 한다(Lee, Fraser & Fillis 2018).

호주예술위원회에서 2017년에 발표한 「예술 직업 창출 (Making Art Work)」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전문 예술인 4만8천명 중 오직 9%만이 장애가 있다. 호주 인구의 18%가 장애인인 데 비해 전문 장애 예술인의 비율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또 장애 예술인의 수입은 비장애 예술인보다 평균 42%가 적고 실업률은 훨씬 높으며, 국가 지원금을 받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어 전문성 개발에 특별히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특별한’ 예술인을 위한 단체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의 예술 활동이 치료나 유희의 목적 혹은 커뮤니티 예술 활동을 넘어 전문적‧직업적 활동으로 인식되기까지 사회적 변화를 도모했고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장애 예술인의 창작역량을 구체화하고 비주류 예술에서 주류의 가장자리로 옮겨올 수 있었던 데에는 장애인 옹호·지지 예술단체들의 몫이 크다.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장애 운동을 시발점으로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해 사회의 장벽을 제거하자는 장애 사회 모델이 대두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비영리 단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주의 예술단체 ‘아츠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리아(Arts Project Australia)’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장애 예술인의 창작역량 개발을 위해 활동한 단체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1974년 호주 멜버른에 설립된 아츠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리아의 초기 목표는 지적장애가 있는 예술인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수집 및 전시하여 지적장애인도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고 유능한 전문 예술인으로서 인정받을 권리가 있음을 예술계와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존에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로부터 만들어지는, 혹은 관습적 문화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을 칭하던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의 범주에서 벗어나 장애 미술을 주류 예술계 가장자리로 들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1984년, 예술치료보다는 예술교육적인 접근 방식의 스튜디오 워크숍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전문 현대미술 작가들과 협업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지적 장애인들이 창작 기술과 인식을 개발하여 스스로 예술적 잠재력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하였고, 예술가로서의 자기비평과 자기계발을 독려하였다. 1992년 8월 빅토리아주에 있는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에서 《인사이드 아웃/아웃 사이드 인》(Inside Out/Outside In) 전시를 열고 지적장애 예술인을 아웃사이더가 아닌 “매우 특별한” 예술인이란 이미지를 미술계에 인식시키며 전략적으로 국제적 인지도를 쌓았다(McAuliffe 1992).

교육과 조력, 매개의 역할

2020년 현재까지 아츠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리아는 호주와 해외에서 100개가 넘는 전시에 참가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 목적을 둔 비영리 사회적기업으로서 스튜디오와 갤러리 공간을 통해 현대미술 워크숍 프로그램과 아티스트 레지던시 등을 주관하고 지적장애 예술인의 작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며 경제적인 혜택을 창출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있고 작품이 팔리면 적절한 보상을 받는 상업 갤러리의 계약 원칙에 따라 지적장애 예술인의 경력을 보호하고 보장한다. 한편, 1975년 설립한 캐나다 캘거리의 ‘인데피니트아츠센터(Indefinite Arts Centre)’와 1976년 설립한 영국 런던의 ‘쉐이프 아츠(Shape Arts)’ 역시 장애 미술의 지속적 성장을 이끌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위 세 단체 모두 장애 예술을 주류 예술계와 사회의 경계선 밖에 두는 풍조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들의 창작역량을 개발하고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표현을 장려하며 꾸준히 교육자, 조력자, 매개자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 전문 예술가로서의 진로를 택한 장애 예술인에게 교육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의 우수성을 기반으로 국내외 저명한 현대미술 작가 및 국립·주립 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장애인 문화예술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모더니즘(Modernism)은 과학과 이성의 합리성, 획일성과 보편성을 중시했던 반면, 이를 비판하며 나타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탈권위적 다원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며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생각 체계와 문화적 기호가 있다.”는 사상에 기반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 정신을 반영하며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가치로서의 관점에서 위계적 권력 관계를 탈피하고자 개인의 생각과 만족을 중시하며 일어났던 문화 운동은 1970년대 장애 운동과 맞물려 장애 예술에 긍적적인 영향을 미쳤다. 장애 예술인 특유의 문화적 정체성과 창작력은 전통적 시장 역할에 기반한 주류 예술계의 미학적 해석과 창의성의 정의를 흔들어 놓았고 동시대 미술의 전개를 다양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메인사진 출처.아츠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리아 페이스북

2020년 11월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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