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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라. 그리고 생각하라
이 글에서는 호주에서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s)을 주요 의제로 추진하고 있는 장애인 예술정책과 이와 관련한 장애인 예술 활동 및 문화예술 프로젝트 등의 사례를 통해 호주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주요 쟁점과 시사점을 간략히 고찰해보고자 한다.
호주 장애 예술 지원 정책의 발전
호주는 1980년대 장애 인권운동이 크게 확산되면서 기존의 장애 복지 프로그램 및 서비스 관련 정책들이 재검토되었고, 1986년에는 「장애인 복지 제도 시행령」(Disability Services Act, DSA)이 제정되었다.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국가 및 민간 차원에서 장애 지원 서비스들이 확장되고 자금지원 및 정책 조정을 통한 장애인의 소득보장과 고용 프로그램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장애인복지법(Disablilty Act)의 시행과 함께 ‘포용적’이라는 개념이 사용되면서 ‘장애인 공동체에 대한 포용과 참여의 극대화’에 정책적으로 중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이어 2009년 문화장관회의(Cultural Ministers Council)에서 호주 및 뉴질랜드 문화장관이 ‘국가 예술과 장애 전략’(Natioanl Arts and Disability Strategy, NADS)을 발표하면서, 장애인들의 예술에 대한 열망과 능력은 호주 문화의 중요한 자산으로 ‘좀 더 포용적인 사회를 장려하고 최고의 실천’을 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특히, 장애 예술인들의 문화 활동 및 참여를 지원하는 기관인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n Council for Arts)는 2014-2016년 장애인 실천계획(Disability Action Plan)에서 장애 예술인들의 창작과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장애 예술가들의 재정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였다. 이와 같이 호주 주류 환경 내에서 장애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에 대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은 호주 사회가 지향하는 창조적, 문화적 평등을 구현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차이’와 ‘다름’을 미학적 전략으로 포용하는 호주의 장애 예술단체
– 아트 액세스 빅토리아
1974년에 설립된 ‘아트 액세스 빅토리아(Arts Access Victoria, 이하 ’AAV’)’는 호주의 장애인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주정부 예술기관이다. 웹사이트를 통해 우수사례를 연구 및 공유하면서 문화예술에 참여를 희망하는 장애인들이 직면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예술계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타 기관들과 협업하여 모색하는 등 포용적이고 접근 가능한 문화예술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레스트리스 무용극단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도(州都) 애들레이드(adelaide)에 소재한 ‘레스트리스 무용극단(Restless Dance Theatre)’은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단체로, 장애가 개별적인 결점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본다. 장애인의 신체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이해를 새롭게 하는 잠재적 수단으로 인식하며 새로운 공연예술을 연구하는 장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장애로 촉발된 포용적 작업과 문화 다양성 실천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레스트리스는 장소 특정적 예술(site specific art)을 시도함으로써 포용적 예술의 국면을 새롭게 하는 데 기여했는데, 이는 ‘친근한 공간(intimate space)’프로젝트에서 애들레이드 힐튼호텔 공연으로 이어졌으며, 2017년 애들레이드 축제에서 완전 매진을 기록할 정도였다.
– 백투백 극단
1987년에 창립한 빅토리아주 멜버른 서남쪽 항구도시인 질롱(Geelong) 소재의 ‘백투백 극단(Back to Back)’은 지적장애인을 중심으로 하는 호주의 대표적인 장애 예술단체로 수준 높은 예술적 개념과 다양한 실험, 매체 활용 등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백투백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극에 대한 선입견,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작품의 몸통으로 간주하며, 모든 프로젝트에서 관객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탐험을 하도록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특히 이들은 작품을 위한 무대 디자인과 조명, 사운드를 중시하며, 작품의 이야기는 개인사와 정치, 그리고 우주의 방대한 세계가 서로 얽혀드는 맥락에 집중한다. 이들은 2000년대 이래 탁월한 기획으로 멜버른 축제를 기반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별히 빅토리아주 정부와 호주 정부는 백투백의 해외 투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장애 예술에 대한 이론적 연구의 중요성
최근 호주의 장애 예술분야에서는 포용적 예술이 매우 중요한 범주로 다루어지면서 장애를 또 하나의 예술 언어이며 보다 확장된 정치적·미학적 발언과 표현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장애 예술을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관점이 아닌 예술적 가치로 다루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2년 AAV에 따르면, 호주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지역 및 민간단체들의 후원, 그리고 장애 예술가들의 활발한 예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장애 예술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이 호주 장애 예술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나아가 국제적인 평가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AAV는 2015년 멜버른대학교와의 공동연구로 영국, 미국, 호주의 광범위한 사례조사를 통해 포용적 예술의 개념과 역사적 변천을 연구하고 영국과 미국, 호주의 정책 비교현황을 제시하는 보고서(「Beyond Access – The Creative Case for Inclusive Arts Practice」, 2015)를 발표하였다.
호주 사례를 통해 바라본 한국 장애 예술정책을 위한 시사점
호주의 장애인 예술정책 및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기본적으로 호주의 장애 예술은 장애 인권운동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고, 이로 인해 정부나 민간단체에서는 장애인 예술 활동을 사회적 복지 차원을 넘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이다. 또한 학자와 비영리단체와의 협업이나 파트너십을 이루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함께 있었다. 이는 호주의 장애인 문화예술정책이 현장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실질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효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장애 예술 및 장애 예술인 지원정책에 관한 논의 이전에 장애 예술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개념 정립 그리고 장애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예술계에서의 인식변화를 주도할 만한 정책적 접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민간 단위의 활동이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장애 예술인 및 단체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 이 글은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 기초연구」(2018,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 및 보완한 것이다.
주명진
경희대학교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이다. 뉴욕대학교에서 예술행정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형예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 및 한국에서 독립큐레이터로 꾸준히 활동하다가 현재는 경희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단국대학교 등에서 전시기획 및 문화예술공간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zoo804@hanmail.net
메인사진출처.www.facebook.com/ASL-SLAM-161526577206967/
2019년 2월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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