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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일본의 장애예술③ 최근의 활동과 참고자료 목소리 내는 예술, 돌보는 예술가

  •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 등록일 2022-07-27
  • 조회수 1493

트렌드리포트

일본 장애계에서 7월 26일은 추모의 날이다. 2016년 7월 26일, 도쿄와 면하고 있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의 중증 지적장애인 거주 시설 ‘츠쿠이 야마유리원’에서 이 시설의 전 직원이 흉기를 휘둘러 장애인 19명이 살해당하고 26명 넘게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당시 26세였던 범인은 시설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중증 장애인은 국익을 위해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범행 전에는 국회의장 앞으로 “장애인은 불행만을 만들 뿐”이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일본의 장애인들에게 ‘나였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김과 동시에 일본 사회 안 장애인 혐오의 극단을 보여준 것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5년째를 맞는 추모의 날 행사에 가장 앞장서는 예술단체는 바로 극단 타이헨(劇団態變)이다. 중증의 신체장애를 가진 몸을 어떤 보장기구도 없이, 심지어 몸의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일본을 대표하는 장애인 극단이다. 재일한국인이기도 한 김만리 씨가 대표로 1983년 창단 이래,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파격적인 무대로 주목받아왔다. 창단 당시부터 장애인 집단 거주 시설의 야만성과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등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무대를 쉼 없이 발표하며, 사회 안에서 장애인의 위치와 권리에 대해 가장 강력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0년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 공연행사인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에 공식 초청되면서, 일본의 젊은 예술인은 물론, 전 세계 공연예술 전문가들에게 자신들의 무대를 선보여 반향을 얻기도 했다. 작년에는 장애인 활동가이자 예술인 김만리의 삶을 자전적으로 담은 책 『꽃은 향기로워도-김만리로 산다는 것』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되기도 했다.

연재 마지막 글에서는, 일본 장애 연극을 대표하는 극단 타이헨 외에 장애인이 주도하거나 주축이 되거나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협업하는 형태로 예술활동을 펼치며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단체를 소개하고자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단체

▸담포포노이에 아트센터 하나(アートセンターHANA)

앞서 연재한 기사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나라현의 복지시설이자 장애인 커뮤니티의 거점이기도 한 담포포노이에(민들레의 집)가 운영하는 아트센터이다. 애초에는 시설 이용자와 종사자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것이, 구성원들의 기량 축적 등과 함께 본격화되어 장애인 예술, 커뮤니티 컬리지 등을 운영하는 아트센터가 되었다. 무용,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활동을 펼치며, 높은 인지도와 실력이 있는 외부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초빙하여 협업 작품을 만들어 그 작품성 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극단인 첼피시의 작품 등에 출연하는 배우 사토 타쿠미 씨가 부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장애인 창작자들이 일상에서 직접 겪는 에피소드들을 무대화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참고로 ‘하나’는 ‘꽃’을 뜻한다.

▸지유극장(じゆう劇場)

돗토리현의 폐교를 거점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극단 ‘새의 극장’이 2013년부터 단체 운영과 작품 제작을 하고 있는 장애인 극단이다. 새의 극장의 예술감독이자 연출인 나카시마 마코토 씨가 지유극장의 연출도 맡고 있다. ‘지유’는 ‘자유’를 뜻한다. 장애인 창작자들이 메인 멤버로 활약하며, 새의 극장 단원, 매년 공모를 통해 새롭게 영입되는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만들고 있다. 주로 고전 희곡을 새롭게 각색하여 무대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매년 신작 공연을 올리고 ‘출장 공연’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협력하여 <어느 마을>(이연주 작, 하동기 연출)을 공동 제작했으며, 7월 초에 새의 극장의 공간에서 대면 공연을 마쳤다.

▸오토아소비노카이(音遊びの会)

고베시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지적장애인 중심의 예술그룹이다. 주로 즉흥음악 라이브 퍼포먼스를 위주로 활동하는데, 이들의 활동에서 ‘음악’이라는 개념을 뒤집는 퍼포먼스가 발생하는 데서 주목을 모으고 있다. 다양한 음악인과 협업을 하는데,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뮤지션 오토모 요시히데가 자주 협업을 선보였고,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던 삿포로국제예술제에도 공식 초청된 바 있다. 2021년에는 동시대 공연예술의 주요 플랫폼인 교토엑스페리먼트에도 초청되어 래퍼와 합동 공연을 선보였다. 그룹명은 ‘소리놀이 모임’이라는 뜻이다.

▸슬로우서커스(スローサーカス)

비영리단체 슬로우라벨(スローレーベル)은 ‘슬로우한 세계를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속도와 생각의 다양성을 반영한 상품 디자인·개발·유통, 사회적 실천을 위한 워크숍, 무대공연 제작, 요코하마패럴트리엔날레 개최 등 장르와 영역, 대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일본 최초의 소셜 서커스 컴퍼니이다. 산재하는 세계의 벽을 서커스로 넘는다는 목표로 서커스 아티스트, 연극연출가, 무용수, 접근성 매니저 등의 트레이너 그룹과 지체·청각·지적 장애 등 저마다의 신체와 정신 조건을 갖고 있는 협력 예술가 등 30명이 단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서커스단으로서 자신들의 공연을 하고, 개인 장애인 예술가로서 장애가 있는 서커스 퍼포머를 필요로 하는 공연·장소에 파견을 나가기도 하며 일반 시민·관객과 함께하는 워크숍, 서커스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외에 솔로 예술가로서 영국에 거주하며 다양한 예술가와 협업하여 자신의 무용 세계를 선보이는 농인 무용수 미나미무라 치사토, 의족을 가진 무용수이자 배우로 다양한 극단 작업에 참여하고 2021년 도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솔로 댄스를 선보인 모리타 카즈요 등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돌보는 예술가들

일본 예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특별히 장애인과 예술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나 돌봄의 경험이 있는 예술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장애인 조력자라는 직업을 병행하는 예술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안무가, 사운드아티스트, 연극연출가, 뮤지션 등 그 장르나 활동 영역 역시 다양하다. 예술작업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예술인들이 특별히 장애인 돌봄, 혹은 장애인 시설 종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창작이나 연습에 집중해야 할 시기를 배려받을 수 있는 근무 시간의 융통성이라는 실질적인 이유 외에도, 예술과 동일한 ‘사람’에 대한 관심, 예술작업과 마찬가지의 팀워크, 애초에 사회나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이게 하는 예술이라는 속성과 연결된 선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애인 돌봄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작업과 연결되는 사례도 있다. 이제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극단 오이보케시(나이듦-치매-죽음이라는 의미)의 연출자는 원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갖고 돌봄을 직업으로 하다가 자신이 돌보는 노인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연극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고, 이제 장애인으로도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또한, 위에서 소개한 아트센터 하나의 부관장 역시 담포포노이에라는 시설에서 조력자로 종사하다가 예술적 경험을 살려 아트센터 하나를 맡게 되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창작을 하지는 않더라도, 장애인 돌봄이라는 또 다른 직업을 통해서 자신의 공연, 창작활동에서 ‘관객’에 대한 개념이 변화한다거나, 장애의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알게 된 후 창작 작업에서 다른 관점이나 변수가 발생했다는 증언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의 장애예술은 제도적인 ‘장애인에 의한 예술창작, 또는 장애인의 예술향유’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대하는 태도와 관점과 사유를 바탕으로 나날이 그 중요성과 결과물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장애예술에 관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마지막으로 일본 장애예술의 현황과 최신 흐름, 사람, 작품을 보다 상세히 알 수 있는 사이트와 책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장애가 있는 예술가, 관객과 함께 만드는 기획과 창작 과정에 또 하나의 참고자료가 되길 바란다.

▸웹사이트 「다이버시티 인 더 아츠」(Diversity in the Arts)

앞선 연재기사에서 소개한 닛폰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예술에 관한 온라인 정보 허브이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인터뷰, 작품 소개, 최신 뉴스 등 다양한 형태의 기사를 통해 일본 장애예술에 관한 최신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단행본 『무대 위의 장애인-경계에서 태어나는 표현』(舞台の上の障害者-境界から生まれる表現)

나가츠 유이치로 저, 규슈대학 출판부, 2018
장애예술 현장에서도 일한 바 있는 젊은 연구자가 쓴 책으로, 일본 내 장애예술의 현황과 사회 내에서 장애예술이 하고 있는 일, 해야 할 일 등 장애예술의 본질을 고찰하고, 다수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단행본 『돌봄과 예술의 교실』(ケアとアートの教室)

도쿄예술대학 다이버시티 온 더 아츠 프로젝트 편저, 2022
도쿄예술대학 학생과 일반 시민이 함께 예술과 복지를 공부한 현장을 연구하여 기록한 책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예술을 통해 보이도록 만든다는 가설하에 성 노동자, 치매 노인, 우울증 환자 등 다양한 시민을 만나며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단행본 『호사스런 시간을 만들다-장애가 있는 사람과 연극 만들기』(贅沢な時間をつくる-障がいのある人との演劇創作)

사회복지법인 와타보시 편저, 2022
담포포노이에 아트센터 하나의 연극 프로젝트 ‘하나플레이’의 신작 <호사스런 시간> 창작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북으로, 이 공연에 참여한 긴키대학 학생, 장애인 창작자, 시설 종사자, 연극 전문가 등 다양한 참여자의 관점으로 ‘연극’을 통해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고 무대가 탄생했는지를 세심하게 기록했다.

[관련 링크]

자문. 후지와라 켄타(Fujiwara Kenta)

공연 제작과 사회복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장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사)벤치 이사, Explat 부이사장, 일본 공연예술 프로듀서 네트워크(ON-PAM) 이사

자문. 모리 마리코(Mori Mariko)

교토조형예술대학 공연예술센터, 교토 마이즈루시 아트프로젝트, 사이타마트리엔날레2016, 닛폰재단 Diversity in the Arts 등 다양한 공연·예술 현장에서 프로듀서, 디렉터로 일하며 장애인을 비롯해 사람과 커뮤니티를 잇는 활동과 창작을 해왔다. 2022년 6월부터 후생노동성 장애인문화예술계획 추진관으로 일하고 있다.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내 얘기 좀 들어봐> 등의 플랜Q 프로젝트, 연극연습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페이스북 jooyoung.koh

2022년 8월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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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3 17: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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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어 번역이 되는 곳이 많지 않아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넘 좋은 것 같아요. 유럽 미국의 사례도 좋은데 한국 상황과 비슷한 아시아의 사례를 더 많이 보고 싶네요.

2022-08-10 09: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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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예술계에는 장애인 조력자라는 직업을 병행하는 예술인이 활발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돌보는 예술가라는 개념 곧, 사람에 대한 괌심, 사회나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이게 하는 예술이라는 속성을 잘 반영하여 우리나라에도 공연예술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더욱 끼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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