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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자폐 스펙트럼 아동청소년을 위한 연극놀이 놀이를 통해 서로를 다시 만나다

  • 이지예 연극놀이사
  • 등록일 2023-12-27
  • 조회수 711

트렌드

‘헌터 하트비트 메소드(Hunter Heartbeat Method)’는 자폐 스펙트럼 아동청소년을 위한 일련의 드라마 게임이다. 영국의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켈리 헌터(Kelly Hunter)가 창안했고, 15년간 런던의 교육 현장에서 혼자 실험을 해 오다가 미국의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연극학과와 영국의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 교육팀의 파트너십 아래, 2011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본격적으로 연구·개발되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조교이자 배우로 참여하면서 8세부터 17세에 이르는 아동청소년들과 매주 연극놀이를 하며 만났다. 그러면서 연극(성)이 무대 밖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고, 어떤 효과를 – 심지어 즉각적으로! –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매 순간 놀라며 확인했다. 만들어진 게임은 후에 책의 형태로, 대학 강의의 형태로, 그리고 극장 공연의 형태로 필요한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교실과 극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창안에서부터 현재까지 헌터 하트비트 메소드가 어떻게 분화 발전하였는지를 모두 나누기에는 이 지면이 매우 부족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특징적인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읽을 수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년간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에서 활동해 온 셰익스피어 전문배우인 켈리 헌터는 당시 순회공연 중이었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방문 중이던 도시의 교화기관에서 연극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참여자들은 수감 중인 재소자들이었다. 쪽대본과 줄줄이 오려 둔 대사, 캐릭터를 설명하는 글을 잔뜩 복사하여 준비한 켈리는 현장에 도착해서야 재소자들 중 누구도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황했던 것도 잠시, 켈리는 준비한 모든 대본을 즉각 폐기하고 즉석에서 몸짓(제스처)과 움직임 중심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대사가 꼭 필요한 경우에는 듣고 따라 하게 하는 방식으로 가르쳤고, 원작의 내용을 바탕으로 인물의 성격과 상황과 장면을 필요에 따라 새롭게 지어냈다. 참여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워크숍은 대성공이었다. 켈리에 따르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던 수줍은 서른 명의 남자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삶에 대한 각자의 뜨거운 열정과 성찰적 질문을 가진 열띤 관객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켈리가 더욱 다양한 방식의 연극을 상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글말뿐 아니라 입말을 통한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관객들과의 연극을 상상하게 했고, 관객의 자리에서 쉽게 배제되고 연극 경험의 기회를 제한당해 온 관객들을 위한 연극을 고민하게 했다. 이때부터 교육 현장에서 연극에 대한 켈리의 접근은 크게 달라졌다. 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공연 관람 에티켓을 잘 숙지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 제시하는 갈등에 대해 자기의 입장이 있는 관객을 길러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장에 참여한 관객이 그 순간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더욱 자유로운 매개자가 되는 것.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켈리가 찾은 곳은 런던 지역의 특수학교들이었다. 장애예술이나 아동교육에 대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적은 전혀 없었지만, 연극을 매개로 다양한 관객을 만나온 터였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즐거운 연극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있었다. 켈리와 아이들은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웠다. 켈리는 아이들에게 연극을, 아이들은 켈리에게 이제껏 켈리가 겪어보지 못한 방식의 소통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놀이

여러 현장을 다니는 동안 켈리는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특히 이 연극놀이에 유독 잘 반응하는 것을 알아챘다. 켈리의 연극은 더욱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강화하는 형식으로 달라졌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1막 2장, 프로스페로가 퍼디난드에게 족쇄를 채워 잡아 가두고 소금물과 홍합, 나무뿌리와 빈 도토리로 연명하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은 프로스페로와 퍼디난드가 두 손에 보이지 않는 장검을 쥐고 겨루는 새로운 장면이 되었고, “네가 나에게 말을 가르쳐 준 덕분에 나는 이제 저주를 할 수 있게 되었지”라는 칼리반의 대사는 미란다와 칼리반이 마주 앉아 서로의 이름을 가르치고 배우는 게임이 되었다. ‘역할놀이’라는 세팅, 그 안에 등장하는 상상 속 인물들, 그들을 연기하며 과장된 감정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다양한 게임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맞춤, 공간감, 움직임, 감정표현 등을 자연스럽게 연습하게 되는 것. 헌터 하트비트 메소드가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놀이에서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이나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켈리의 ‘놀이’는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다. 연극학과의 배우들이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연극놀이를 하는 동안 심리학과의 연구자들은 이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몇 주가 지나고, 심리학과 팀이 ‘타인과의 눈맞춤을 덜 불편해함’, ‘더욱 긴 시간 동안 한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됨’ 등의 변화가 참가자 다수에게서 관찰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심리학과 팀원들은 좀 놀란 듯 보였지만 연극학과 배우들 중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크게 기뻤다. 하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이러한 변화는 결과였을 뿐, 목적이 아니기도 했고, 우리가 아이들의 필요에 조금 더 섬세하게 귀 기울이며 함께 노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히 성장했을 뿐이었다.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워크숍을 거쳐 간 아이들의 부모들에게서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은 소통 매개로서 예술의 가능성과 효과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했고 확신했다.

변화는 결과일 뿐

헌터 하트비트 메소드는 예술이 ‘치료’가 아니라 ‘놀이’가 될 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이 얼마나 다양해지는지, 그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가 ‘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를 그 어떤 응용 연극 활동보다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프로그램의 특장점을 여럿 발견했고, 새로이 장점을 찾을 때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이 작업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코로나를 포함한 여러 가지 제약과 조건 때문에 첫발을 떼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2023년 하반기에 드디어 이 작업을 소개할 목적으로 한국을 찾을 기회를 얻었다. 언어번역뿐 아니라 문화번역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영미권에서 개발된 이 놀이를 한국에 맞게 바꿔 내는 일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과 품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기대가 크고 설렘이 앞선다. 놀이로서의 예술이 소통의 매개로서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각자의 영역에서 깊이 고민해 온 여러 작업자를 두루 만날 생각에, 이 작업을 어떻게 확장하고 확산할 수 있을지 상상되는 그림에 2024년 새해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 십여 명이 바닥에 그려진 원을 따라 둥글게 서서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자폐증’ 예술강사 트레이닝 워크숍

  • 사람들이 바닥에 그려진 원을 따라 둘러앉아 있고, 원 안에는 성인과 아이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마주 보고 서 있다.

    오하이오주 웩스터 아트센터에서의 〈템페스트〉 공연

  • 십여 명이 바닥에 그려진 원을 따라 둥글게 앉아 있고, 원 안에는 한 아동이 앉아 있다.

    오하이오주 킨본 중학교에서의 파일럿 워크숍

  • 오륙 명이 바닥에 그려진 원을 따라 둥글게 앉아 있고, 원 안에는 세 사람이 점프하고 있다.

    오하이오주 윈터셋 초등학교에서의 워크숍

 

이지예

연극학 박사. 연극놀이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신경다양 아동청소년을 위한 연극놀이를 연구 개발하고 있다. 연극놀이 워크숍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 아동청소년을 만나고 있으며, 연극놀이를 배우고자 하는 교사, 예술가, 예술교육가들을 위한 워크숍을 기획·진행한다.
celafina@gmail.com

사진 제공.필자

2024년 1월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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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07: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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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치료의 새로운 장르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술의 영역에서 치료가 놀이를 통해서 이뤄질 때 얼마나 다양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지 흥미진진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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