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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장애인의 예술노동을 지원하는 액세스투워크 예술과 노동 사이, 활동을 지원하기

  • 문영민 장애예술 연구자
  • 등록일 2021-07-28
  • 조회수 2181

트랜드리포트

장애인의 예술노동을 지원하는 액세스투워크

예술과 노동 사이, 활동을 지원하기

문영민 장애예술 연구자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장애 예술가 A 씨의 하루를 지원한다고 상상해보자. 시작은 A 씨의 출근길에서부터다. 그와 지하철 타는 것을 동행하거나 운전을 보조하는 일로 시작한다. 연습실에 출근한 이후 A 씨를 지원하는 일은 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다. 대본 리딩을 하는 시간에 연출가의 코멘트를 정리해야 할 때, A 씨 손의 구동에 어려움이 있다면 필기를 지원해야 할 것이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면 수어나 문자 등 A 씨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연출가의 말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A 씨가 동작이나 움직임을 연습할 때 그의 신체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보조해야 할 수도 있다. 식사 시간에 A 씨의 식사를 보조하거나 화장실에 함께 가는 것 역시 지원자의 역할이다. 연습 후 공연장에 답사하러 가야 한다면? 동행하는 일도 역시 그를 지원하는 일이다. A 씨가 공연을 만드는 일련의 업무에 도움을 받고자 공적인 지원자를 찾는다면 두 가지의 제도를 탐색해볼 수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근로지원인 지원제도’이다.

한국 :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근로지원인 지원제도

국내에서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로 대표적인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로 혼자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중증의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사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에서 지원되는 급여는 활동보조,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이며, 이 중 활동보조의 영역에서 활동지원인이 신체활동지원, 가사활동지원, 이동보조 등을 지원하게 된다. 한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시행 중인 근로지원인 지원제도는 직장생활 지원에 좀 더 초점을 둔 지원으로 중증장애를 가진 노동자가 장애로 인해 부수적인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때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공연을 만드는 업무에 두 제도를 이용하기는 모두 어려움이 있다. 먼저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일상과 사회생활을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이므로, 활동지원인이 A 씨의 공연제작 활동지원에 필요한 전문적이고 숙련된 역량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인 구인 시 구체적인 업무의 범위를 명확하게 제시할 경우 매칭이 어려우며, 특히 전문적이거나 힘든 업무에 대한 기피 현상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국가인권위원회(2014), 「장애인활동지원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참조). 또한, A 씨가 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면 근로지원인 제도를 신청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영국 : 장애 예술인의 노동을 지원하는 액세스투워크

영국의 평등법(The Equality Act 2010)하에서 시행되고 있는 ‘액세스투워크(Access to Work)’는 적절한 편의시설, 장비, 근로지원인(Support Worker) 지원을 포함하여 장애인 노동자가 유급 노동을 수행할 때 직면하는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보조금을 제공해 접근 가능한 작업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이다. 한국의 근로지원인 지원제도가 대부분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인 문화예술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액세스투워크에서의 근로지원인 지원은 종사상 지위의 제한이 없어서 문화예술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영국의 장애예술온라인(Disability Art Online)은 2019년에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의 지원을 받아 특별히 장애 예술 종사자 및 고용주를 위한 「액세스투워크 안내서(Access to Work – Guide for the Arts and Cultural Sector)」를 출간하였다. 이 자료는 수어와 오디오 버전, 쉬운 언어 버전으로 공개되어 있다. (하단 참고자료 참조)

액세스투워크에 지원할 수 있는 장애인의 손상 혹은 장애 조건은 제한이 없다. 일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나 만성적 건강 문제를 가진 노동자나 구직자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또한, 정규직, 일시직, 임시직, 자영업 등 종사상 지위의 제약이 없다. 구직 중인 면접에서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경우 연평균 소득이 하한선 6,025파운드(한화 약 950만 원)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다. 장애 예술가가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도 소득기준에 포함된다. 연평균 소득이 예술보조금 10,000파운드인 장애 예술가가 9,000파운드를 작업에 사용한 후 실제 수령한 인건비가 1,000파운드라면, 보조금 수령액이 하한선을 초과하므로 액세스투워크에 지원할 수 있다. 작업을 처음 시작하는 예술가여서 소득이나 세금납부 기록이 없다면 자신의 기술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자기소개서(CV, Curriculum Vitae)를 제출하면 된다.

액세스투워크에서 지원하는 근로지원인의 유형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 수화통역사(Sign-language interpreter)
  • 구화통역사(Lip speaker)
  • 기록자(Note-taker)
  • 문자통역사(Palantypist)
  • 음성통역사(Personal reader) : 문자를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 이동 동행자(Travel-buddy) : 업무의 일환인 이동을 동행하는 사람
  • 상담가(Counsellor) : - 업무에서 맞닥뜨리는 스트레스로부터 정신건강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 상담가
  • 운전자(Driver)
  • 잡코치(Job coach) : -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필요한 주요 업무를 배우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
  • 돌봄 제공자(Carer) : 유급 활동보조인
  • 정신건강 지원 서비스 제공자(The Mental Health Support Service)
  • 직무보조인(Job aide) : - 업무의 일환인 숙련 업무를 보조하는 사람으로 주당 작업 시간의 20% 이상은 직무보조인의 업무가 포함되어야 함

위 리스트에서 장애 예술가의 일에 대한 접근을 의사소통 측면에서 지원하는 사람으로 수화통역사, 구화통역사, 문자통역사, 음성통역사 등 역할이 세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업무 공간에서 숙련 업무를 지원하는 직무보조인뿐 아니라, 업무 공간 밖에서 이동이나 출장 등을 지원하는 이동 동행자나 운전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노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노동에 대한 지원 영역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상담과 정신건강 관리 영역에서도 역시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특히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은 그 업무가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작업에서 적절한 대처전략을 개발하게 하고, 업무를 잘 수행하도록 작업공간을 조정하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신질환을 가지게 된 경우 이를 지원하는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것도 근로지원인으로서 정신건강 지원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이다.

일할 권리, 지원할 책임

영국의 액세스투워크 제도는 장애 예술가의 활동 역시 ‘노동’으로 인정한다는 점, 노동자로서 장애 예술가에 대한 지원의 책임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울시에서 2020년부터 시행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 내에 문화예술 직무가 포함되는 등 인식의 변화를 꾀하는 여러 시도가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예술활동은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여가나 소일거리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액세스투워크는 하루에 8시간 정해진 사업장에 머물며 노동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시공간에서 작업하는 장애 예술가도 동등하게 지원한다.

지원하는 노동의 범주와 지원인의 유형이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출퇴근,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출장 지원은 물론이고, 카운슬링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 등도 노동자를 위한 필수적인 지원으로 간주된다. 업무가 비정형적이기 쉬운 문화예술 노동의 특성상 다양한 업무의 범주에서 유연하게 노동을 지원하는 지원인의 존재는 장애 예술가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영국의 액세스투워크는 노동, 작업, 활동 혹은 무엇이라고 명명하든 간에 장애 예술가의 ‘일’을 지원하는 책임을 공공과 공동체가 공유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 예술가의 일의 의미를 이제 노동으로 함께 사유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자료]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의 공연 〈연극의 3요소〉〈불편한 입장들〉에 참여하였고, 공연으로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에 관심이 있다.
saojungym@daum.net

2021. 8월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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