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드리포트
접근성을 생각하는 기술
나와 세상과 연결하는 새로운 도구
소통은 나를 표현하고 상대를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상대의 의도와 마음을 느끼고, 나를 명확히 표현해서 서로가 잘 이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은 표정, 몸짓, 음성, 시간, 스킨십, 조명, 주변 환경 등 매우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중에서도 시각과 청각을 통한 표현이 소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시각이나 청각으로 상대의 표현을 느끼기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통은 단편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큰 범위로 보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상호작용이다. 이 세상이 나에게 전달하는 것을 느끼고, 나를 세상 가운데 표현하는 과정이다.
전통적인 소통 방법인 공연예술이나 시각예술, 인쇄물 그리고 최근에는 오디오나 영상매체, IT 서비스, AI 시스템 등에 이르기까지 시각 또는 청각을 활용해서 세상과 ‘나’는 끊임없이 소통을 이어간다. 하지만 시각이나 청각에 어려움이 있는 ‘나’는 이런 소통에 제한적이거나 소외된다. 분명 세상 가운데에 있지만, 소통이 단절되면 혼자가 된다. 이미 소통에서 배제되어버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최신 IT 기술을 통해 보다 나은 소통, 세상과의 연결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있다.
손쉽게 사용하는 배리어프리 기능
매년 5월 셋째 주 목요일은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AAD) 이다. 접근성 개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2년 처음 만들어졌고,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기업과 단체에서 접근성 관련 신기술을 공개하고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2021년 GAAD를 기념하여 애플에서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최신 기술을 공개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인타임(SignTime)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매장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 직원이 수어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애플에서는 수어 통역사와 바로 연결되는 사인타임 서비스를 통해 수어를 사용한 소통이 가능하게 했다. 애플 매장 또는 기술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원활한 소통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는 미국 수화(ASL), 영국 수화(BSL), 프랑스 수화(LSF)가 지원되고 앞으로 지원 국가를 확대한다고 한다.
팔이나 손가락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터치 기반의 모바일기기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현대사회에서 모바일기기의 활용이 어렵게 되면 세상과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소통의 단절을 다시 이어줄 새로운 기술이 있다. 아이패드에 새롭게 적용된 아이 트래킹(Eye tracking)으로, 눈동자의 움직임을 추적해서 화면상의 포인터를 이동시키고, 눈의 깜박임으로 화면에 ‘탭’ 같은 동작이 실행되는 기술이다.
시각적인 정보의 인식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기술도 있다. 바로 사진에 관련된 기술이다. 사진은 다양한 의미와 정보를 담고 있다. 단순히 시각적인 장면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과의 관계, 그때의 기억, 그 장소의 느낌 등 다양한 감정과 추억을 함께 담고 있다. 하지만 사진이 담고 있는 다양한 정보를 시각장애를 가진 사용자에게 그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술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인 보이스오버(VoiceOver)를 활용해 사진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으로 기록된 여러 정보를 인식하고, 사진에 담겨있는 그때의 감정이나 추억을 다시 소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에 포함된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 데이터가 담겨있는 표, 사진 속 텍스트 등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신박하고 좋은 기술이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기능은 아직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보다 나은 소통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시각과 청각, 인지능력, 운동능력 관련 기능이 애플 홈페이지 손쉬운 사용 메뉴에 공개되었다. 참고로 iOS와 macOS는 ‘손쉬운 사용’, 안드로이드 기기는 ‘접근성’, 윈도우는 ‘접근성 설정’을 통해 이미 오래전부터 장애를 가진 사용자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접근성 기술이 만드는 보편적 문화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채널이 예전에는 TV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현재는 PC와 모바일기기에서 즐기는 OTT 서비스가 보편화 되었다.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누구나 즐기고, 모두가 즐겨야 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이런 사회현상에 참여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시청 약자는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소리 없이 전달되는 영상 정보를 인식하기 어렵고,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막 없이 전달되는 소리 정보를 인식하기 어렵다. 국내 대부분의 OTT 서비스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OTT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도 GAAD를 기념해서 시청 약자를 위해 현재 서비스 중인 넷플릭스 접근성 기술을 다시 한번 안내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시각, 청각의 장애로 인해 콘텐츠를 즐기기 어려운 사용자를 위해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화면상에 표시되는 텍스트와 장면전환, 배우의 움직임 등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화면해설, 배우의 대사 또는 각종 효과음 등을 텍스트로 볼 수 있는 폐쇄자막(Closed Caption, CC)을 제공하며, 오리지널 콘텐츠 외에 다른 콘텐츠로 접근성 서비스가 확장되고 있다.
시청 약자의 범주에는 언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도 포함된다. 다른 언어권의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에게 큰 장벽이다. 언어로 인한 소통의 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 32개 언어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시각, 청각, 언어로 인한 장애가 있더라도 동영상 콘텐츠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세상과 이어주는 도구, 기술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어려워 여러 부분에서 소통 단절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그동안은 이런 상황을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이미 소통에서 배제되어 버린 ‘나’는 그냥 그렇게 세상 가운데 혼자가 되어 살아왔다. 하지만 기술은 소통이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간다. 시각장애인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와 센서가 있고, 이것을 분석하는 사물인식 기술과 AI 시스템이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의 귀를 대신하는 각종 오디오 센서가 있고, 이것을 분석하는 각종 알림, 음성인식 서비스 등이 있다. 신체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을 보조하는 각종 센서와 음성명령, 로봇기술까지 등장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세상과 나를 소통하게 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를 다시 세상과 연결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김혜일
접근성 전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다수의 웹 접근성 관련 사용자 평가를 해왔다. 국내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화면 낭독기 개발기업의 기술자문을 하였으며, 현재 다양한 웹사이트, 모바일 앱 등의 접근성 평가와 자문을 하고 있다. 『웹 접근성과 품질인증』(2013)을 공동집필 했다.
haeppa@gmail.com
2021년 7월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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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칼럼입니다. 자주 들어와 구독하겠습니다.
이음온라인2021-06-30 11:11:20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미 있는 생각과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