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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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7일부터 11일까지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열린 장애예술 축제 ‘언리미티드 페스티벌(Unlimited Festival)’에 다녀왔다. ‘아티스트 델리게이트(artist delegate)’로 주최 측의 초대를 받은 덕분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및 패럴림픽과 연계하여 특별 기획된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2013년 영국예술위원회가 지속적인 지원을 결정하면서 이후 2년마다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언리미티드 프로젝트는 장애예술단체 셰이프아트(Shape Arts)와 예술단체 아트어드민(Artsadmin)이 공동진행하고 독립 프로듀서 조 베런트(Joe Verrant)가 총괄해오다가, 2022년 3월에 조 베런트를 대표로 하는 독립단체 언리미티드로 분리되었다. 올해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언리미티드가 독립단체가 된 후 개최한 첫 번째 축제였다.
나는 2018년 가을에도 영국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는데, 장애는 물론이고 성적 지향, 인종, 문화, 언어, 국적 모든 면에서 다양성이 넘치는 축제공간에서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예술적·정치적 실천을 여럿 만난 기억이 있다. 뚜렛 증후군을 가진 공연자가 자기 몸의 우발적 특성을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안에 통합했던 공연, 중증장애 여성 예술가가 전동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가기 위해 독특하고 창의적인 블록 오브젝트를 활용하고 그 블록을 이용하는 과정을 다시 안무화한 퍼포먼스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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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다시 찾은 2022년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여전히 장애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성, 자유로운 교류의 기회 등 매력적인 시공간이었지만 2018년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일부 공연과 세미나는 여전히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펼쳐질 예정이던 몇 개의 공연은 영국 여왕의 사망으로 축제 도중 취소되었다. 전반적으로 심포지엄이나 세미나 같은 공연전시 이외의 프로그램도 2018년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독립단체가 된 언리미티드가 개최한 첫 번째 축제였기에,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기회가 아무래도 예년보다 줄어든 탓일까 조심스럽게 짐작한다.
축제 외적인 불가피한 사정을 제외하더라도, 이번 축제에 아쉬움이 남은 이유는 더 있다.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이 가진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은 인종이나 성적 지향 등 장애 이외의 다양한 정치적 소수성이 교차하는 풍요로운 ‘다양성의 장’이라는 데서 온다. 한국의 장애예술 축제에서 우리는 (장애가 없는) 이주민의 서사, 성소수자의 신체성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만나기 어렵다. 반면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올해 개막작으로 공연 <새턴리턴(Saturn Return)>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과거에 노예선 침몰로 수백 명의 흑인이 사망한 사건을 두 명의 젊은 흑인 공연자의 몸과 언어에 반복적으로 투사하면서,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온 정체성의 서사가 개인의 몸과 정신 안에서 파괴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표현한다. 두 퍼포머는 유려하게 움직이고, 흑인 작가, 흑인 연출가, 흑인 퍼포머들이 만든 이 무대에서 관객은 과거와 현재를 순환하는 인종차별의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장애에 국한되지 않는 정치적 소수성을 장애예술 축제라는 이름이 붙은 시공간에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새턴리턴>이 왜 이번 축제의 ‘개막작’이어야 하는지를 쉽게 납득할 수는 없었다. 인종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분명 과거 차별과 정치적 억압으로 집단적 학살을 당했던 장애인들의 역사와 공명한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내가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서 기대하는 것은 피억압자들의 공통된 경험을 백화점식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이 억압의 경험들이 예술적 실천 가운데서 어떻게 교차하며 서로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더 확장하는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새턴리턴>에서 나는 장애와 인종의 교차성에 관한 (직접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특별한 시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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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이 가진 한계에 나는 다소 실망했지만, 이 한계를 직시할 수 있는 감각 역시 여기에서 얻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나와 함께 아티스트 델리게이트로 초청된 에스텔라 라포니(Estela Lapponi)는 브라질 상파울루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무용수이자 비디오 아티스트, 큐레이터다. 배우로 활동하던 24세 때 뇌출혈로 신체의 한쪽이 마비된 에스텔라는 이후 장애를 가진 몸과 움직임에 기반한 무용 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에스텔라와 나는 <새턴리턴>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에스텔라는 이 작업이 지나치게 ‘매끄럽다’고 지적했다. 주제의식과 표현된 이야기가 좋았지만, 무대 위의 음악과 대사, 공연자들의 춤은 기술적으로 그저 말끔했을 뿐 어떤 새로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무대는 ‘비장애’ 상태였다.
에스텔라의 지적은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서 소개되는 작품이라면 모두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이 출연해야 한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그 역시 적절한 ‘교차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텔라는 언리미티드 팟캐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언제나 장애를 가진 내 몸을, 침탈당한 몸들, ‘비정상적’ 몸들과 교차하기 위해 애씁니다. 포르투갈의 침략으로 식민지화된 브라질 원주민들의 몸이 그렇습니다. 나는 나의 작업, 나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다른 주제에 관해 의견을 표명하고 싶습니다. 숲에 대해서, 원주민에 대해서, 환경에 대해서요. 이런 주제들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 에스텔라 라포니 (인터뷰 바로가기(링크))
나와 에스텔라,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정신장애인 하나 매드니스(Hana Madness)는 초청 예술가로서 주최 측이 참가에 따르는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초청예술가 자세히 보기(링크)) 우리는 활동지원사의 비용까지 지원받고 런던으로 갔다. 그리고 팟캐스트 녹음 이외에 어떤 의무도 부여받지 않았다. 그저 사우스뱅크 센터를 오가며 다른 예술가와 대화하고, 공연을 보고, 전시를 보면 되었다. 사실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무방했다. 이렇게 자유롭게 펼쳐진 시공간에서 나는 장애를 가진 몸을 통해서 파괴되는 숲과 원주민의 삶을 위한 정치적 선언을 수행하는 예술가를 만났다.
장애예술 축제는 다양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소수자들의 경험이 교차하는 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장애보다 더 크고 더 많은 문제와 경험에 눈을 돌린다. 동시에 장애의 경험이 그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품는다. 한국의 장애예술은 짧은 기간 발전하며 점점 매끈해지고 있다. 반면 장애예술을 통해 이를 수 있는 놀라운 다양성과 정치적·문화적 급진성은 점차 소진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물음을 일깨워줄 우리 장애예술의 ‘타자’, 말하자면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의 에스텔라 라포니 같은 존재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김원영
작가, 공연예술가. 법과 규범, 예술, 장애를 가진 몸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의 책을 썼고, 연극 <무용수-되기>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등에 출연했다.
greece815@gmail.com
사진 제공. 필자
2022년 12월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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