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지난 4월부터 진행한 「2022 부산 장애예술인 활동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가 11월 마무리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1년 장애 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이후 지역에서 처음 이루어진 실태조사다. 이번 실태조사의 지향점은 부산의 장애예술인이 처한 사회·문화·환경적 특성을 반영한 ‘부산형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제언에 있다. 우리의 첫 번째 고민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질문을 구성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고민은 100명이라는 적은 수의 모집단으로 여러 장애 유형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2018년 선행 조사가 있었지만, ‘장애예술인’ 개념이 법적으로 공식화하기 이전이었고, 교육·취미 활동과 전문예술 활동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라, 이번 실태조사에서 개념과 범위 대부분을 새롭게 설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부산 장애예술 현장을 파악하는 것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FGI와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질문이 놓치는 부분과 모집단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21년 「부산광역시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파악한 장애등록을 한 예술인과 장애예술인 창작공간 ‘온그루’를 통해 연결한 장애예술인을 모집단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
낮은 정보 접근성, 창작 환경의 미비
조사 결과, 응답자의 64.0%가 예술인 경력정보시스템(예술활동증명)에 등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등록(36.0%) 이유로는 ‘예술활동증명을 몰랐다’는 응답이 50.0%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절차가 까다롭다’ 36.1%였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문제가 예술 부문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전국 조사와 달리 부산의 실태조사에는 장애예술인에 대한 조작적 정의에 ‘스스로 전문예술인이라 여기고 있음’ 항목을 포함했다. 이 항목이 지나치게 포괄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포괄적 항목을 배제하면 장애예술인 인정 폭이 좁아져 놓치는 부분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 및 협회·단체의 경우, 전체 응답 기관 중 장애예술인 회원이 있는 기관은 7.3%에 불과했다, 장애예술인 회원 수는 평균 0.47명으로 3명 이상 활동하는 기관이 2.7%에 그쳤다. 문화예술 활동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관은 39.3%이고, 공간은 주로 교육실이었다. 창작 전용공간보다는 폭넓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을 구비하는 것이 실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은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장애 예술인 창작 전용공간 온그루를 마련했는데,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부산은 산지가 많은 탓에 주간선도로 인근을 제외하면 경사지가 압도적으로 많다. 복지관 같은 많은 장애인 시설이 지하철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장애예술인이 거주지와 가까운 공간에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기존 시설 중에서 창작 전용공간은 교육실 형태가 대부분이고, 그것마저 150개 응답 기관 평균 0.41개에 불과하다. 이는 복지관 등 시설의 주 업무가 장애예술인 창작지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시설 및 기관에 창작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거점별 소규모 창작 전용공간이 더 실용적일 수 있다.
장애예술인과 기관 및 협회·단체 대상으로 각각 진행한 ‘정책별 시급도 및 중요도 포트폴리오 분석’에서 부산 장애예술인이 원하는 지원정책 방향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5점 척도에서 모든 항목이 평균 3.6점 이상으로, 부산지역 장애예술인 정책 시급도 및 중요도가 높게 평가되었다. 그중 ‘문화시설/프로그램의 장애인 접근성 확대’와 ‘장애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장애예술인/비장애예술인 협력 기회 확대’ 항목은 장애예술인과 기관 및 협회・단체 모두 시급도와 중요도가 높게 나타났다. 이는 생활 안정과 장애 인식 그리고 이동 편의성 같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때까지 가장 절실했던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부산형 지원정책을 위한 제언
부산의 장애예술 활동이 조금씩 확산하고 있지만, 이를 비장애인이 주도하는 기성 예술계가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은 아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장애예술인을 규정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결국 장애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차이를 더 공식화하고 공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도’가 아니라 장애인‘만’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배타적 특권으로 보이지 않을까? 장애예술이 여성주의, 디아스포라처럼 기존 예술의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것이라고 인식할 위험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장애예술인을 규정하고 장애예술 개념을 정리해 내세울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없어져야 할 구분을 오히려 명확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한계였다.
장애예술이 처한 상황과 문제가 드러난 것은 장애예술인, 비장애 예술인, 기관과 단체 관계자들과 진행한 FGI에서였다. 먼저 장애 유형의 차이다. 이 문제는 모든 FGI에서 언급되었다.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또 다른 차별과 소외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이와 함께 장애를 이해하는 예술 전문강사 부족 문제도 공통으로 제기됐다. 여기에 더해 발달장애인 부모의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발달장애인에게 무엇을 전달할 때 반복이 필요한데, 예술강사는 시간을 들여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부모는 그 일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나 활동보조사 같은 매개자 대상 예술교육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부산에는 장애인식교육을 함께하는 장애예술 전문강사 교육 프로그램이 없고, 현재 활동하는 강사들은 개인적 경험에만 의존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예술지원사업은 대부분 선정 후 10개월 이내에 가시적인 결과를 요구한다. 비장애 예술가에게도 벅찬 시간인데, 장애예술인에게는 이런 흐름이 더 힘들다. 1년 안에 모든 것을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준비, 창작, 결과, 공유로 나누어 연차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장애예술인이 복지관 같은 기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복지관 예술사업도 다년간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지원사업에서 과정의 효과에 중점을 두고 결과를 도출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장애 때문에 겪는 문화적·정치적 경험을 예술로 표현하는 장애예술의 미학적 특성은 관계 미학적이고 수행 미학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다. 관계 미학은 사회적 문맥 안에서 인간 상호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예술작품이 상상하고 유발하는 예술 형태이고, 수행 미학은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게 하는 전환적 힘에 근거하며, 예술적 현상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을 넘나드는 현상과 경험도 포괄하는 미학 개념이자 문화적 개념이다. 장애예술에서 과정이 중요하고 시간이 더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산 장애예술인 활동 지원정책 수립에 기초자료가 될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우리는 ‘부산형 정책’을 언급했다. 하지만, ‘부산형 정책’이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를 7개월 안에 구체화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부산 장애예술 지형을 제대로 반영한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부산형’을 언급한 이유도 실태조사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구심점 없는 부산의 장애예술인, 산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지대에 들어선 창작 활동 공간, 촘촘하지 못한 장애예술 네트워크, 준비가 부족한 장애예술 콘텐츠를 포괄할 수 있는 정책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부산형 정책’이다. 장애예술 현장의 목소리까지 담은 보고서가 완성되면 공은 부산시로 넘어간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라는 장애인 당사자주의가 정책 수립 단계에서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이상헌
지체장애인. 춤 비평가. 춤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 필진, 부산문화회관 월간지 [예술의 초대] 편집위원, 민주주의사회연구소 학술지 [성찰과 전망] 편집위원장, 부산시립무용단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2 부산 장애예술인 활동 실태조사」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다.
lsanghe@hanmail.net
자료 제공.필자
2022년 11월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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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서 다룬 지역의 장애예술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요, 부산 장애예술인 실태조사를 통해 부산의 장애예술 현황과 현안을 좀더 깊게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온그루를 포함해 부산형 지원정책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