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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65만 3,000명.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년 4월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 수다. 이 숫자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 대비 5.2%에 달하며, 대구광역시 전체 인구보다 약 30만 명 많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 안에서, 더하여 문화예술 현장에서 장애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목도하는 경험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2015년 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음’을 개관했고, 2020년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되었다. 최근 10년간 이러한 변화로 인해 장애와 예술이 접점을 넓히며 꾸준히 발전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일례로, 장애예술인의 창작을 돕는 ‘장애예술인 창작지원금 제도’를 포함하여, 장애예술인의 참여 확대 및 고용 등에 대한 법적 지위가 명시적으로 확보되었다. 그렇지만 장애예술인 창작지원과 장애예술에 대한 예우는 대부분 ‘구분 짓기’의 범주 안에서 주류보다는 비주류로, 기본권 보장의 관점보다는 복지와 시혜의 차원에서 이뤄져 왔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구분 짓기는 문화예술교육에서도 통용된다. 장애가 있는 특수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장애가 없는 다수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는 구분되어 설계되고 제공되어 왔다. 예를 들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가 함께하는 ‘복지시설 이용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장애예술 기획, 유통 및 교육 분야 매개자 양성 교육 과정’ 등에서도 정책설계의 외연에서 읽히는 일종의 구분이 존재한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피교육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케네디 센터(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또한 이미 1974년부터 장애문화예술 운동의 일환으로 VSA(Very Special Arts; 매우 특별한 예술) 프로그램(링크)을 운영해 오고 있다. 이외에도 장애 스펙트럼과 지적·신체적 장애에 따라 대상별 특화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크고 작은 북미권 비영리 단체와 기관들의 예시는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비록 학자들 간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피교육자에 대한 ‘차별’의 관점이 아닌 ‘다름’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교육과정과 접근 방식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조사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확연히 체감된 몇 가지 차이를 발견했다. 어쩌면 그 지점들이 “왜 문화예술 현장에서 장애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목도하는 경험은 극히 제한적일까?”라는 질문에 일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세 가지 차원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선도하는 북미권 유관 기관의 홈페이지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체계적이고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케네디 센터의 VSA에는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관련 교수법과 교안·교구뿐 아니라, 학습자료 및 연수 정보, 연구자료, 주요 칼럼 등 현장 교사와 예술 강사를 위한 각종 유용한 자료가 아카이빙 되어 있다. 즉, 기관의 홈페이지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전략과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를 소개하고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 자료 및 연수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플랫폼 활용과 정보제공 노력은 분명히 우리 현실과는 간극이 존재했다.
둘째, 한국학계와 미국학계 사이에 확인되는 장애예술, 장애예술교육 등에 관한 연구력 및 연구 결과물의 압도적인 차이다. 물론 이는 본질적으로 인구수 차이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지만, 예술교육과 특수교육(Arts Education and Special Education)을 위시한 전문 학술지부터 각종 학회와 세미나 등의 양적 차이와 연구력을 국가 간 차이로 본다면 뼈아픈 괴리가 존재한다. 이는 비단 한국 문화예술교육 학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의 주요 연구기관과 연구비 지원정책, 대학의 교육정책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결과적으로 축적된 연구와 지식의 양은 분명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며,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셋째, 장애와 예술교육의 관계를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적 관점에서 필수 교육 자원으로 보는 시선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훌륭한 시민사회의 기초이자 시민교육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지금까지 우리의 화두는 어떻게 장애인 피교육자의 니즈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대부분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흡족할 만한 문화예술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매몰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문화예술교육이 비장애인의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가? 실로 장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사회통합과 시민성이라는 차원에서 주요한 교육 주제이나, 이를 적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논의와 고민은 극히 제한적이지 않았는지 반추해 본다.
미국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이하 NEA)은 1970년대부터 유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장애인 문화예술교육과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접근성을 위한 설계: 문화행정가를 위한 핸드북(Design for Accessibility: A Cultural Administrator’s Handbook)」(링크)은 NEA가 발간하는 대표적인 참고자료로 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반드시 숙지해야 할 주요 정보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출간한 「국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및 개선방향 연구」(링크)를 포함하여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을 위한 제도적 보완과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하드웨어 중심의 시설뿐 아니라 우리의 정보, 지식, 관점의 변화가 모두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까. 장애와 문화예술교육의 교차점에서, 교육 자료의 아카이빙, 연구, 그리고 쌍방향 교육으로의 환원을 위한 관점의 변화를 미국의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현황을 통해 짚어보며, 우리나라 장애예술교육의 도약과 진화를 꿈꿔본다.
김인설
가톨릭대학교 공연예술문화학과 교수. 예술로 사회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는 주제들을 연구한다. 문화정책과 예술경영, 문화예술교육 분야 등 다수의 국내외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국책 연구와 자문을 수행해 왔다.
insul.kim@gmail.com
2023년 5월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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