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2022년 시작한 이음리뷰클럽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이 창작자, 관계자, 관객으로 참여한 공연, 전시, 행사의 감상과 후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올해 새롭게 모인 4기 멤버 역시 예술의 미학적 완성도에서 접근성 이슈까지,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눕니다.
2026년 1월~2월의 리뷰▶ 전시 《스탬프와 함께하는 화폐박물관 여행》 | 전시 《신낭만사회》 | 전시 《한국 근현대미술 : 붓으로 빚은 한국의 서정》 |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 연극 〈리타 길들이기〉
고명숙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다녀왔어요. ‘스탬프와 함께하는 화폐박물관 여행’. 전시실을 따라 걸으며 하나씩 도장을 찍는 활동도 했어요. 어린이들도 어른들도 같이 순서를 기다리며 도장 찍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화폐의 변천 과정은 물론, 시대마다 달라진 디자인과 위조 방지 기술, 그리고 돈에 담긴 역사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던 지폐와 동전 속 인물과 상징을 다시 바라보니, 화폐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가치와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옛 화폐를 보며 그 시절 사람들의 삶과 경제를 상상해 보는 시간이 인상 깊었습니다. 낯설지만 어딘가 정겨운 모습에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몇몇 대통령 서명이 있는 연해 첫 발행 지폐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비록 모형이긴 해도 1억 원어치 묶음 지폐를 보고 활동지원사님께 안아보시라고 권하기도 하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는 동안 어렵게 느껴졌던 경제와 금융이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내부에 경사로, 엘리베이터, 점자,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아직 리프트를 사용해야 하더군요. 직원분과 연락을 취해 리프트를 타고 들어갔고, 관람 후 또 연락을 취해 밖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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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이런 박물관 본 적 있어?
(출처: 한국은행 유튜브)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스탬프북 표지
(출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홈페이지)
양병철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전시회를 보고 양병철과 이희원의 대화를 이희원이 기록합니다.
희원:오늘 전시회는 어땠어?
병철:재밌어. 〈감시요새식당〉 그림.
희원:심규철 작가의 게임 속 캐릭터가 온갖 음식을 먹고 있는 그림이었지. 그 작가는 연필이랑 펜으로 작고 세밀하게 그리더라. 파리 시내를 그린 작품도 엄청났어.
병철:〈파리와 내가 사랑한 것들〉. 팔이 네 개인 사람도 있어.
희원:맞아. 다양한 사람들, 자동차, 건물들도. 다른 작가 그림은 어땠어?
병철:정장우 작가 그림.
희원:흔들림 속에 꼿꼿함. 이 그림이지. 그림 옆 소개글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어. “청소년 시절 왕따를 당한 적 있는 정장우는 사람에게서 직접적인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움직이는 기운에서 위로를 얻었다.”라고.
병철:나도 고등학교 때 복학생 형이 때렸어. 그때 맞아서 코뼈가 휘었어.
희원:헐. 그래, 지금 보니까 코가 약간 휘어 보여. 그 일이 있을 때 도와준 사람이 없었어?
병철:맞았을 때 내 편 들어준 친구는 없었어.
희원:정장우 작가처럼 그때는 사람에게 위로를 얻지 못했겠다. 지금은 있어?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사람.
병철:가족.
희원:가족 말고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있잖아.
병철:같이 다니는 동생들. 근데 위로는 아니야. 그냥 놀아.
희원:하핫. 다 동생들이라 거기서 형님이구먼. 우리 나이가 그럴 나이다.
병철:내가 커피 사줘.
희원:지갑을 열어야 하네. 동생들이 좋아하겠다. 전시회 제목이 생각난다.
병철:신낭만사회.
〈파리와 내가 사랑한 것들〉 작품 감상 중
〈파리와 내가 사랑한 것들〉 작품 일부
임현주
설 명절을 맞아 쇼핑몰은 붐비고 귀향길에 들어선 차들로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하다. 찾아올 사람도 없고 찾아뵐 어른도 없는 나는 명절이 별로 반갑지 않다. 우연히 방문한 갤러리에서 고향 같은 우리나라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났다. 간혹 달력이나 도록으로 이미지를 접하기는 했는데 실제 작품을 대하니 감동이 더했다. 마침, 지인과 함께 작품 감상을 나누게 되어 더욱 풍성했다. 이대원 작가의 작품 앞에서 지인과 대화를 나눴다.
나:이대원 작가의 풍경화는 실제 눈으로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색 구성을 했어요. 작가가 사용하는 빨강, 초록, 파랑 등은 원색으로 생명의 기원이 느껴져요. 순수하게 역동하는 에너지. 그로 인해 나무가 자라고 숲을 이루고 열매를 맺지요. 그 에너지는 하늘과 땅에 생명을 공급하고 우리를 살게 하죠. 또한 빨강, 초록, 파랑은 서로 어우러져 또 다른 색을 만들고요. 이는 인간 세상의 삶과 같아요.
지인:이대원의 나무는 독립불구(獨立不懼)의 상징이죠. 오직 자기(自己)로서 뿌리를 내리고 홀로 두려움 없이 서 있습니다. 서로를 샘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거지요. 작가는 기꺼이 이 나무처럼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윤중식 작가는 월남한 실향민으로 강, 고깃배, 먼 산, 뭉게구름 등 대동강에서 스케치하던 풍경을 그렸다.
나:작가가 사용한 노랑, 주홍은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요. 그림에 검고 굵은 테두리는 그러한 감정을 절제하는 느낌을 줍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여러 번 이사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어요. 내가 만일 고향을 그린다면 안정감과 행복,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하늘색, 핑크색, 연두색, 연보라 등 파스텔 톤을 사용할 것 같아요.
지인:인간은 부모를 닮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처음 보고 느끼는 고향의 자연을 닮지요.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던 빗소리, 서산으로 지던 붉은 해, 윤슬로 빛나던 냇가, 가을 낮 고추잠자리 떼, 밥 지을 때 올라오던 연기. 이 모두가 그리움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에 만난 《붓으로 빚은 한국의 서정》은 마치 고향의 어른을 만나고 온 듯 그분들의 옛이야기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대원, 〈농원〉
윤중식, 〈강변〉
김보라
전시장 밖으로 조금 더 넓게 흘러나온 전시의 시작 공간. 사람들 사이에 옅은 글귀가 숨겨진 노란 페인팅들이 가려져 있었고 곧 사람들이 다음 방으로 빠졌다. 드디어 키오스크 속 사람을 품는 듯, 고요한 춤을 추는 듯한 (고 김보석) 수어 해설가의 아름다운 몸짓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옆에 준비된 촉각 키트와 촉지도. 나는 눈을 감고 잠시 손끝으로 준비된 접근성 가이드들을 즐겨보았다.
홍보물에서 본 듯한 흙이 가득한 방이 첫 번째 전시장이었다. 열심히 흙을 파던 경작자에게 한 아주머니가 “수고가 많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고, 옆에 있던 나와도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쓰레기들은 혹시 어디서 가져온 건가요? 전시장 주변에서 가져왔나요?”
“아,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고 작가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쓰레기라기보단 저희는 재료라고 부릅니다.” (멋쩍게 웃음)
“아아, 그렇네요. 재료가 맞겠네요.” (수긍하며 웃음)
“날마다 다른데, 오늘은 낙엽과 종이들을 갈아 준비해 주셔서 지금 막 흙에 뿌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한동안 이리저리 주제를 넘나들며 이어졌다. 나는 그가 지질학을 공부하고 박사 과정을 그만둔 후 잠시 생각을 비우고 싶어서 이 일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과 그의 태도에 확인차 이 작품의 ‘퍼포머’를 구했던 거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경작자’를 찾았다고 한다.
여러 삭는 작품들을 지나오니 다른 공기와 재질의 검은 칸 안에 들어섰다. 뜨개질하며 작가가 써온 일기,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날씨 예보 같은 어떤 날의 날씨 그림을 묘하게 교차시켜 놓은 패널들을 읽어가며 나는 검은 칸 테두리를 느릿하게 쭈욱 돌아보게 되었다.
‘코 수를 조정(늘리거나 줄이거나)하면 공간의 축이 바뀐다. 2023.12.1.’
‘섭씨 0.4°C 습도 61% 바람 S 3.3m/s 2025.2.10.’
날씨는 매일 다르다. 사실 우리의 마음 날씨도 매일이 다르다.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은 만큼,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만큼,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돌보기로 마음먹은 만큼, 우리 세상의 축은 이미 변했다. 또 계속해서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전시 리플릿을 살펴보니 전시장 몇 군데는 나의 직관이 이끄는 동선에는 걸리지도 않는 조금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었고, 난 몇 점의 작품만 보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크게 아쉽지가 않았다. 어쩌면 이날 나의 축은 내가 보지 못한 전시장과는 먼 곳에 기울어져 있었다.
살다 보면 또 다른 삭임을 맞이할 우리는 하루하루의 마음 날씨를 품지는 않아도 알아차리고 알아주며 그에 맞는 매무새로 서로를 대하길 바라며, 감사했던 이음리뷰클럽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한다.
아사드 라자, 〈흡수〉 설치 전경
지혜연
미용사 ‘리타’와 문학교수 ‘프랭크’가 나누는 교감.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갖게 된 리타와 권태로움에 빠져있던 프랭크는 서로의 삶에 활력소가 되며, 열정적이고 입체적인 인생으로 변한다. 리타의 옷차림에서 점점 지적인 여성이 되어가는 변화가 보인다. 화려한 원색에서 점점 차분해지고 일반화되는 것이다. 제목이 〈리타 길들이기〉인데 프랭크가 길들여진다.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프랭크는 점점 평범해지는 리타에게 실망한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갈등이 생기며 서로에게서 독립하게 된다.
러닝타임이 110분이며,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의상 변화가 많고 암전이 많다. 대사 템포는 빠르나 너무 늘어지는 감이 있다. 아마도 극장의 의자 때문인 듯한데 110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의자가 아니다. 몸이 불편하니 오랜 시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조혜련 배우의 리타는 그녀가 가진 이미지를 생각해 더 자유분방할 줄 알았으나 기대보다 평면적이었다. 연기가 아쉬웠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 그녀의 이미지가 너무나 ‘리타’ 그 자체였는데 정돈된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문학적인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조혜련의 리타를 꼭 만나보시길!
커튼콜 장면
못다 한 이야기
고명숙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 동안 이음리뷰클럽에 참여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문화예술 공연전시를 관람하고 소감문을 쓰는 시간이, 제게는 커다란 선물처럼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장애 당사자로 참여하는 만큼 장애예술 작품들을 찾아가고자 했던 처음의 각오와 계획에서 자꾸 어긋나게 되는 상황에 점점 무기력해지기는 했습니다만, 다양한 곳을 접했다고 다독이며 아쉬움과 미안함도 함께 내비칩니다.
김보라
매달 내가 본 예술을 글로 남기는 일은 또 다른 작업이었다. 리뷰클럽 덕분에 든든한 우리 기수분들과 6개월간 이 작업을 이어온 게 앞으로의 나에게 응원을 보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함께 나눈 날들 감사해요. 아쉬워라...
또 다른 작업에서 기쁜 마음으로 마주치길.
양병철
이음리뷰클럽 4기 마지막 리뷰예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같이 해서 재미있고 좋았어요. 감동. 다음에 또 하고 싶어요.
임현주
평소 전시 관람은 종종 하지만 눈으로만 감상할 때가 많았다. 받은 감동이나 느낀 점이 있어도 그냥 흘려보내고 시간이 지나면 잊곤 했다. 리뷰클럽 활동하면서 작품 감상하며 내면의 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었고, 작가의 의도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작품 속에 숨겨진 영혼과 사회적 메시지를 발견하며 기록을 남기고 다른 멤버들과 소통할 때 즐거웠다. 4기 멤버로 활동한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
지혜연
리뷰클럽을 하면서 ‘꼭 여러 장르를 접해야지’ 했는데 역시나 무대예술만 접했다.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느꼈다. 변색해가려는 생각을 빨리 글로 옮겼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보여주는 게 꽤 부끄러웠지만 뿌듯함이 있었다!

고명숙
장애불자문화예술단체 ‘보리수아래’에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 중에서도 채식을 좋아하고, 믹스커피 중독입니다. 뇌성마비에 저시력이고, 고양이, 토끼와 사는 집사입니다.

김보라
도시 안에서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여전히 시각 중심적인 미술이 어떻게 감각을 재구성하며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공동체적 관점으로 탐구한다.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희귀 망막 변화로 인해 저시력-접근성의 세계에 들어선 지 채 1년이 안 되었다. 그간 여러 단체전과 퍼포먼스 페스티벌, 발달장애인/신경다양성 전문배우극단과 소리와 빛 중심의 공연단에서 작가 및 퍼포머로 함께하였다. 현재는 단체 ‘둥지’와 개인전 《터치투어⠁⠢마음씨》를 통해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양병철
취미는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이고, 가족과 함께 삽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이고, 아이스 커피와 과자도 좋아해요. 용산행복장애인자립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임현주
지체장애를 가진 미술작가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통해 소통할 때 즐겁습니다. 개인전 및 초대전 10회, 단체전 200여 회 참가하였습니다.

지혜연
사막여우. 연기하는 사람. 큰 귀를 가진 사막여우처럼 잘 듣고 싶어 인공와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
사진 및 캡션 제공.필자
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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