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장애의 시선⑥ 만화계와 장애
숨어있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만화가 되려면
부끄러웠다.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만화계 어디선가 일정한 영역이 있고,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거니 했다. 웬걸, 자료를 찾아보면서야 나를 포함한 만화계 전체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게 되었다. 비록 무지몽매함이 그 원인의 한 축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장애인의 인권과 문화권 침해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핑곗거리는 무지하니 많다. 한 번도 장애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해야 할 연구가 산더미라서, 학생들 지도하기도 벅차서 등등. 내 역할에 충실한 것만도 어디냐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보면, 만화계에서 장애인 창작자를 만나거나 장애를 다루는 작품들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을, 세상에 숨어있는 것을,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면, 정말 만화가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장애인도 장애도 우리 눈앞에 드러나게끔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보건복지부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의 비율이 전 국민의 5.1%이다. 단순비교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작가 중 5%, 아니 그 반의반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 당연함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오랫동안 만화계와 인연을 맺어왔는데, 장애인이자 만화작가로는 이해경 작가밖에 만난 적이 없다. 만난 적은 없으나 <<는 귀머거리다>를 연재했던 라일라 작가를 제외하면 아는 장애인 작가가 없다. 만화가들의 단체로 사단법인인 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한국웹툰작가협회, 웹툰협회가 있고, 일반 협단체로 한국여성만화가협회, 한국원로만가협회가 있다. 여성만화가, 원로만화가는 있어도 장애 만화인들의 단체는 보이지 않는다. 웹툰 작가만 5,800명 규모에다 예비작가군이 14만 명에 이르는 창작자 풀에서 장애인 만화창작자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만화 형식이 시각에 기반하고 있으니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변명해볼 수 있으나, 전체 장애 중 시각장애는 11%에 불과하다. 청각장애나 지체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만화를 창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주변에 없는 것일까. 답은 뻔하다. 관습적으로, 정책적으로, 교육적으로, 장벽이 높으니까.
작가 풀은 변명의 여지 없이 빈약하다. 하지만 장애를 다룬 만화작품들은 그나마 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매주 연재하고 있는 웹툰의 숫자를 아주 최소한으로 잡아서 1,200종이라고 본다면, 1%도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연재작품이 너무나 많고, 그러다 보니 수입구조의 차이가 너무 크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월 수익이 몇억 원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몇백만 원도 어렵다. 수익을 떠나 조회수가 떨어지면 다음번 연재를 보장받을 수 없다. 진지한 문제 제기를 하는 작품들보다 흥미 위주의 허구세계를 좋아하는 독자가 훨씬 많다 보니 ‘장애’라는 소재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창작자의 인식 문제도 공존한다. 최근 기안84의 작품이 여성에 대한 묘사가 부적절하니 방송에서 하차하고 작품을 내리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대해 웹툰협회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 것이며, 작품이 싫으면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혹시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나 혐오를 야기하는 표현이 없는가에 대한 자기검열은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모든 이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한때 검열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으로 진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을 당연시하고 있는 게 아닐는지.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일부 만화가들이 일궈온 활동이 공공예산으로 사업화된 경우도 있다. 2013년에 만화가의 권리를 위해 만든 한국만화인협동조합은 2014년에 우연히 장애인 대상 교육프로그램으로 ‘장애인 웹툰 작가 양성교육’을 하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이러한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움직임이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으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원하는 ‘청년장애인 웹툰아카데미’ 사업으로 확장되는 데 기여했다. 웹툰 교육과정을 장애인기관에 위탁해서 운영하게끔 사업예산을 지원하는 것인데, 작년엔 5개 기관, 올해는 4개 기관을 추가로 선정해서 총 9개 기관이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한국만화인협동조합도 운영기관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프로그램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이 얼마만큼 알찬지,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성과가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직은 섣부르다. 공적 예산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19년도 사업예산 규모가 156억 원 정도인데 이 사업에 12억 원을 배정한 것을 보면, 전체 규모의 5%는 초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만화 관련 예산이 있음으로 만화계 전체로 보면 대략 5% 정도의 예산을 장애 관련 사업에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 사업을 제외하고 나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이 없다. 규모가 큰 지원사업도 중요하지만, 좀 더 정교하고 장기적인 지원 방안을 고민할 때가 아닐까. 만화계의 전문인력에는 창작자만이 아니라 편집자, 프로듀서, 이론가나 비평가 등 다양한 직종이 있다. 창작인력으로의 교육과정만 운영하지 말고, 다양해지는 게 어떨까. 그리고 장애인을 전문인력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를 다루는 좋은 작품들이 더 알려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 결국 비장애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장애인이 경험해야만 하는 다양한 장애물이 하나씩 사라질 수 있을 테니까.
만화계에 계신 분들,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합시다.
한상정
만화와 지역문화 연구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인천광역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만화이론을 전공하고, 원주를 거쳐 인천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과 연구 중이다.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문화대학원 지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hsj870@empas.com
www.facebook.com/sangjung.han.3
메인사진 출처. 성내종합사회복지관 2019 청년장애인웹툰아카데미 수업사진
2020년 09월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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