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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장애의 시선④ 동화 『함께 달리는 바퀴』 에세이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우린 함께라서 더 좋아!

  • 윤석정 시인·문학공연 연출가
  • 등록일 2019-12-25
  • 조회수 398

트렌드리포트

장애의 시선④ 동화 『함께 달리는 바퀴』 에세이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우린 함께라서 더 좋아!

윤석정 시인·문학공연 연출가

3살 아들은 매일 잠들기 전 책장에서 그림책을 꺼내 아빠,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공룡 책을 먼저 가져오고 여러 동·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건네준다. 일단 책을 꺼내기 시작하면 내가 책을 낭독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책을 가져다 놓는다. 며칠 전 아들은 나에게 낯선 동화책을 내밀었다. 노랑풍선이 쓰고 홍인영이 그린 동화 『함께 달리는 바퀴』(2018, 크레용하우스)였다. 책을 손에 든 순간 표지에 그려진 ‘휠체어를 탄 아이’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들에게 처음으로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었다.

몸 어딘가 불편한 데가 있듯

주인공 현석이가 다니는 샛별유치원 기린반에 새 친구가 왔다. 휠체어를 탄 준이였다. 준이는 친구들에게 밝게 인사를 했다. 기린반 친구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실내에서 자전거를 타도되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준이는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바퀴 달린 의자’라고 하며 자신이 움직이려면 휠체어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준이는 걷지 못하는 것만 빼고 밥을 골고루 잘 먹었고 그림을 잘 그렸고 노래를 잘 불렀다. 그다음 날 현석이는 준이에게 먼저 인사했고 놀이터에서 함께 놀자고 했다. 현석이는 자전거를, 준이는 휠체어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나란히 휠체어와 자전거가 달리면서 우정으로 부푸는 바퀴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상상해봤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너무 아름답고 감격스러웠다.

현석이는 이제야 알았어요. 휠체어는 현석이의 눈이 되어 주는 안경처럼 준이의 다리가 되어 주는 고마운 것이라는 걸요!

현석이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듯 준이도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것뿐 자신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현석이는 준이를 통해 장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는 바퀴』를 아들에게 들려주니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었다. 만약 아이들이 현석이처럼 장애를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나중에 내 아들도 현석이처럼 장애가 있는 친구와 함께 놀 수 있을까, 의문이 삐죽 삐져나왔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진 동화 같은 장면을 쉬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그림책을 꺼내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나의 늘어진 생각이 묵직해졌다.

나는, 장애인의 형제자매

이윽고 『함께 달리는 바퀴』에서 비롯된 나의 생각이 형제들의 우애로 옮겨갔다. 책장을 넘기는 게 너무나도 무거웠던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2018, 피치마켓)이었다. 이 책은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자조 모임 ‘나는’의 가넷, 겨울, 나비, 메이, 무지개, 삼각형, 써니 등(필명 사용)이 2016년 <대나무숲 티타임> 프로그램에서 나눴던 그들의 속사정을 담아냈다. 비장애 형제들이 부모나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한 상처와 부담, 고민과 불안한 미래 등을 대화의 형식과 수필로 풀어냈던 것. 비장애 형제들의 진솔한 대화들은 나의 마음을 오래 붙잡아 놓았다. 나도 아는 사람 중에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이가 있었지만 그동안 그들의 속사정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 책을 만나고서야 아는 사람들의 속사정과 말 못 한 까닭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봤다.

어머니의 삶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제가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죠. 나는 부모님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 겨울, 41쪽.

비장애 형제들은 장애인 형제자매와 함께 성장하면서 끈끈한 우애를 다졌다. 사춘기에 반항심을 품기도 했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덜 받아 형제자매의 장애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둘러 철이 든 듯했다. 삶이 힘겨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짐이 되지 않기로 일찍 마음먹었던 것. 그들은 장애인 형제자매를 보살폈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고민했다. 반대로 부모들은 비장애 형제들에게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주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일까. 부모들은 비장애 형제들이 유년기를 보냈을 때 그들에게 형제자매의 장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저에게 해 준 설명은 동생은 2살 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저를 배려한다면서 ‘너는 동생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했거든요.(일동 : 맞아요, 저도 그 말 들었어요.) 아마 엄마는 저를 배려해서, 동생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저를 최대한 보호해 주려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동생의 장애와 관련된 상황을 설명해 줬으면 지금 제가 좀 더 엄마를 이해했을 텐데 아쉽죠.– 메이, 78~79쪽.

메이의 말처럼 그의 어머니는 동생의 장애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했지만 어쩌면 어머니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메이를 보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 속에서 어머니도 충분히 힘들었을 테니까. 그러나 비장애 형제들도 장애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부정적 인식을 처절하게 느끼면서 성장해왔다.

공감의 힘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정서가 있잖아요. ‘내가 너보다 더 힘드니까 넌 조용히 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어디서 어리광을 부리니.’, ‘행복한 줄 알아라. 동생이 못 하는 걸 넌 할 수 있잖아.’ 그런 정서가 바탕이 되니,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장애가 없는 자식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부모는 철저히 우리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거죠.– 가넷, 97쪽.

부모들은 장애가 있는 자식을 보살피고 챙기느라 장애가 없는 자식에게 덜 신경 썼고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간혹 부모들은 비장애 자식에게 깊이 공감하지 못한 말을 뱉기도 했을 것이다. 가넷이 한국 정서라고 표현했듯 ‘내가 너보다 더 힘드니까 넌 조용히 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어디서 어리광을 부리니.’ ‘행복한 줄 알아라. 동생이 못하는 걸 넌 할 수 있잖아.’라고 말이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마음을 닫아버리고 아예 잠가버릴 듯싶다. 앞서 말했듯 비장애 형제들이 부모나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한 속사정을 ‘나는’에서 술술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 공감해서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사람들을 가르쳐서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의무감 또한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 써니의 수필, 68~69쪽.

장애인의 가족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시선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겪고 있다. 또한 비장애 형제들은 부모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와 고통, 책임감을 짊어져야 한다. 더욱이 그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맞서고 깨야 한다는 의무감도 갖고 있다. 모든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들이 ‘부담감’이나 ‘책임감’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소망해본다.

윤석정

시인.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자 2007년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를 결성했고 문학공연 기획·제작 및 연출을 즐겨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기획과 홍보를 맡고 있다.
pungkyung@empal.com 페이스북 바로가기(링크) 홈페이지 바로가기(링크)

이미지제공. 크레용하우스, 피치마켓

2019년 12월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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