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장애의 시선③ 소설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
몸이 불편하다고 마음에 장애가 있는 건 아냐
퇴근길,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서둘러 튕겨 나왔다. 얼핏 보니 승객이 많지 않은 듯했는데 사람들이 더디게 들어갔다. 두세 명이 들어서니 필자도 겨우 몸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커다란 전동 휠체어가 출입구를 막고 있었던 것. 필자는 전동 휠체어에 앉아있는 장애인을 쳐다봤다. 그는 가로로 고개를 숙인 채 반복해서 위아래로 머리를 끄덕였고 허벅지에 태블릿PC를 올려놓고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고 있었다. 그는 똑같은 동물의 얼굴들을 누르면 팡팡 터지는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 번 지하철이 멈췄고 반복적으로 사람들이 튕겨 나갔다가 더디게 들어왔다. 한 중년 남성은 “×발, 왜 출입구를 막고 난리야!”라고 화를 내면서 내렸다. 그 말이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파고들었고 전동 휠체어 둘레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남성을 쫓아가 이래저래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외면했다. 그는 팡팡 터지는 동물의 얼굴처럼 한시라도 빨리 지하철에서 사라지고픈 마음이었으리라.
희망의 노래
버스를 기다리다가
‘병신인가 베’하며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운 날은
길 위에 돌부리가
무던히도 많이 솟아났다
– 최명숙, 「희망」 부분
시적 화자는 장애를 비하한 말과 눈길이 부담스러워 돌부리를 바라본다. 돌부리로 비유된 그 눈길에 시적 화자의 마음이 무던히도 걸려 넘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뇌성마비가 있는 최명숙 시인이 아니었다면 어느 시인이 장애에 대한 부담스러운 시선을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가는 길마다 돌부리에 채어 넘어져도
뭣하나 다를 게 없다고 여겨져도
더러는 사랑을 보듬은 사람들이 곁에서 사는 세상
사는 건 등불 하나 들고 가는 것
– 최명숙, 「희망」 부분
희망을 노래한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주말에 혼자서 조그만 사찰들 같은 데에 많이 가요. 가서 스님들 만나고,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 얘기가 내 시의 보고예요.”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여행과 일상, 사람들 속에서 시를 발견하고 시적 대상을 형상화한다. 더욱이 최 시인의 마음은 미움과 상처보다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등불 하나 들고 위태롭게 살아가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 얼굴이 일그러지고 언어장애가 있어도 시인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자기만의 삶을 일궈나간다.
수천, 수백만 개의 단어들
샤론 M. 드레이퍼의 장편소설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뜨인돌, 2018)은 열두 살 소녀 ‘멜로디’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다. 필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장애인의 마음을 처음 들여다봤다. 책장을 덮고서 한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마음이 먹먹했다. 그간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단어들이 마음에서 소용돌이쳤다.
단어들이 잠잠해지자 또렷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소설의 장면으로 바뀌었고 필자의 마음에 멜로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책장을 펼치고 첫 장을 읽으니 마지막 장과 내용이 똑같았다. 멜로디가 쓴 자서전(장애 학생들과 비장애 학생들의 통합 국어 수업에서 고든 선생님이 내준 자서전 숙제) 첫 부분이었다.
단어들.
나는 수천 개의 단어에 둘러싸여 있다. 아니, 어쩌면 수백만 개쯤일까.
(중략)
단어들은 흩날리는 눈발처럼 언제나 내 주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눈송이는 저마다 다르고 부드럽다.
그리고 내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대로 녹아 버린다.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단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멜로디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다.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혼자서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수 없다. 반면 아주 뻣뻣한 팔과 엄지손가락으로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휠체어를 탈 수 있다. 그런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음악이 흐르면 소리에서 색을 느끼고 소리의 냄새를 맡는다. 또한 주변에서 듣는 대부분의 단어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멜로디는 단어를 써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 마음에 단어들을 산더미처럼 쌓고만 있다.
멜로디를 끔찍이 사랑하는 아빠, 엄마와 몇 안 되는 주변 인물(바이올렛 발렌시아, 캐서린)은 멜로디가 ‘스티븐 호킹’처럼 똑똑하다는 것을 알지만 의사들,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멜로디가 ‘나를 위한 컴퓨터’를 갖기 전까지. 멜로디는 통합 수업 교실에서 로즈의 노트북을 본 후 자신을 대신해 말할 수 있는 컴퓨터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마침 고든 선생님이 자서전 쓰기에 앞서 특정 인물의 전기를 쓰도록 했고 멜로디는 스티븐 호킹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멜로디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스티븐 호킹의 대화 장비와 컴퓨터가 궁금해졌다. 멜로디는 엄지손가락만으로 작동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다. 수업 도우미 캐서린은 멜로디를 위한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검색했고 마침내 ‘메디토커’ 기기를 찾았다. 메디토커는 버튼이 커서 엄지손가락만으로 누르기 수월했고 문장(표현)과 수많은 단어를 저장할 수 있었다. 멜로디가 메디토커에 문장과 단어를 저장하면 컴퓨터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멜로디는 상대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왜 저만 남겨두고 간거죠?
멜로디의 열두 살 인생은 메디토커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먼저 멜로디는 통합 수업 교실에서 친구들과 메디토커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멜로디는 온전히 한 집단의 일부가 된 기분을 느꼈다. 그다음은 디밍 선생님과 준비한 <위즈 키즈> 대회 출전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멜로디가 스폴딩초등학교를 대표하는 퀴즈 대회 참가팀에 합류했고 서부 오하이오 지역 <위즈 키즈> 대회 예선에서 1등을 차지했다. ‘비밀무기’가 된 멜로디의 활약으로 스폴딩초등학교 대표팀은 워싱턴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 출전 티켓을 얻었다. 멜로디는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지만 팀원들의 시기(猜忌)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전국 대회가 치러지는 날, 동부 지역에 눈보라가 몰아쳐 워싱턴행 비행기가 모두 결항됐다. 멜로디를 제외하고 다른 팀원들은 이미 1시간 전에 동부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던 것.
며칠이 지나 멜로디는 디밍 선생님의 통합 수업에 들어가 “왜 저만 남겨 두고 간 거죠?”라고 따져 물었다. 멜로디는 숨지도 않았고 참지도 않았다. 디밍 선생님과 팀원들은 멜로디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팀원들이 멜로디에게 사과의 의미로 준 9등 트로피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멜로디는 “쌤통이다!”며 전동 휠체어를 켜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한테 이런 문제들이 있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까지 산더미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들에게 알려야 하고, 어떻게 해야 평범하게 보일지도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써야 하고, 가끔은 남자아이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열두 살 멜로디의 마음은 또래 다른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몸이 더 불편해서 다른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겪어야 한다. 만약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자신과 다르지 않은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면 어찌 장애를 함부로 말하거나 차별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우리의 멜로디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모두가 각성해야 할 때다.
윤석정
시인.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의 저변을 넓히고자 2007년 시를 노래하는 ‘트루베르’를 결성했고 문학공연 기획·제작 및 연출을 즐겨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기획과 홍보를 맡고 있다.
pungkyu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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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제공.뜨인돌 출판사
2019년 11월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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