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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비장애 예술가가 장애와 만난 순간① 구도심의 아름다움에 시무룩해진 이유

  • 전지 작가
  • 등록일 2024-08-28
  • 조회수 607

이슈

나는 구도심을 관찰해서 그것으로 미술을 한다.

            그림 : 한 손으로 3층 주택 모형을 잡고 다른 한 손에 든 붓으로 색을 칠하고 있다. 옆에는 파레트와 물통이 놓여 있다. ‘구도심에 가장 많은 붉은 벽돌조 다가구주택을 점토로 빚어 만듦’이라는 지문이 쓰여 있다. 구도심은 주거지와 길이 오랫동안 조금씩 변화한 곳들이라 길과 건물들이 회화적이다.

            “규칙적이지 않고
            여러 이야기들이 중첩되고 쌓여
            단순하지 않고 깊이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함.”

            그림 : 좁은 계단길이 있는 골목에 다락이 있는 단층 주택이 하나 있다. 주택 옥상에는 초록식물 화분들과 의자가 놓여 있다. 그렇게 작업하다가 작년에 일자리찾기 일환으로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지원해서 안양장애인인권센터에 파견되었다.
            “안녕하세요. 저 꼭 하고 싶습니다. 안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제일 먼저 오셨네요.”

            그림 : 하단에 ‘비대면 온라인 메타버스로 진행된 2023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지문이 쓰여 있고 가상 캐릭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네모 박스 앞 사람 캐릭터에 ‘안양장애인인권센터’라고 쓰여 있고, ‘참여예술인_전지’ 캐릭터가 인사 나눈다. 하루는 센터 대표님의 전동휠체어를 빌려서 안양을 좀 돌아다녀 본 후, 휠체어 이동에 대한 만화를 그려보기로 했다.

            ‘괜히 비장애인인 거 티 나서 빌런으로 촬영당하는 거 아닐지….’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그림 : 거리의 인도 쪽에서 필자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지이이잉’ 소리가 난다. 내가 살고있는 구도심 동네보다 훨씬 잘 구획된 안양 신도심에서 ‘딱 3시간’ 혼자 전동휠체어로 이동해 보고서 나는

            완전 겁을 먹어버렸다.

            그림 : 파마한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필자의 패닉 상태를 까만 바탕에 흰 선로 표현했다. 처음이라 휠체어 조작이 미숙했던 것도 있겠지만 우리 동네보다 3배는 넓은 인도에 주차되어 있던
            불법주차 차량들과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공유킥보드와 자전거 때문에
            직진도 쉽지 않았다.

            그림 : 인도에는 차와 쓰러진 전동킥보드가 길을 막고 있고 도로에는 차가 다녀, 휠체어를 탄 필자가 인도와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이동하고 있다. ‘빠앙’ 자동차 경적이 울린다. 또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거리는 너무 넓어서 내리려던 역을 지나쳤고, 화장실은 엄두도 나지 않아서 이동 중에 물도 마시지 않았다.

            ‘바퀴 빠지겠는 걸….’

            그림 : 이분할 그림 속 휠체어를 탄 필자가 지하철의 열린 문 앞에서 넓게 틈이 벌어진 승강장을 난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다른 면에는 필자가 화장실 안내판에 계단과 ‘460M’라고 표시된 것을 보며 ‘꼴깍’ 침을 삼킨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회화적이고 조형적이라고 생각했던 다양한 언덕과 비정형적인 계단들이 있는 구도심 동네에서 장애인 주민들이 자주 보이지 않는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림 : 필자가 동네의 초록이 푸르른 언덕에 놓인 나선형의 계단길을 걸어 오르고 있다. 곡선이 귀엽다고 생각됐던 언덕은 일반 휠체어는 아예 상상도 안되고, 전동휠체어로도 위험한 기울기와 거칠은 표면이었다.

            “해맑은 비장애인 미술인의 작품이었구나….”

            그림 : 작품제목 〈그리고 싶은 욕구 콕콕〉이라고 쓰여 있고, 양손 위에 골목길과 언덕 위 계단 모습이 그려진 조형물을 들고 있다. 골목마다 빽빽이 주차되어 있고 인도가 따로 있지 않아서 자동차와 배달오토바이를 수시로 비켜줘야 하는 이 골목에서
            비장애인인 나는 요리조리 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읏챠”
            “오, 계단 조형미!”

            그림 : 도로 한쪽에 차량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고, 배달 오토바이가 ‘부아아앙’ 지나가고 있다. 필자는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피하며 계단을 올려다보고 ‘찰칵’ 촬영하고 있다. 일상적인 도구들로 거의 창작에 가까운 대형주차금지 사물들 또한 휠체어의 이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다양한 마감의 주차금지 사물들도 그저 다양하고 귀엽다며 미술로 보고 채집했던 미술인 본인.

            그림 : ‘사진을 오린 후 세워 모아뒀던 작업’이라는 지문이 쓰여 있고, 커다란 테이블 위에 나무화분, 의자, 타이어 등의 주차금지 사물들을 인쇄한 사진들이 놓여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역시 구도심은 재개발이 답이다!’ 할 것 같은데. 다양한 이동방식을 고려해서 현재 상황을 수정해나가는 건 진짜 불가능인 걸까.

            “아, 싫으면 엎으면 됩니다.”
            “읏챠”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 : 빗금이 그어진 시멘트 길과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구도심 동네 땅덩어리를 검은 양복을 입은 양손이 번쩍 들어올린다. ‘쩌억’ 소리가 난다. 들어올려진 동네 속 사람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국회의원들이 하루 3시간씩만 동행인이나 카메라 없이 (셀프 촬영도 안됨) 혼자 휠체어 이동을 해본다면 얼마나 말도 안되게 불편한지 알게 될 텐데.
            홀홀 단신으로 직접 다녀보면 그렇게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할 텐데.
            국회의원: “촬영은 그럼…” “인증은 그럼…”
            필자: “아, 촬영 없습니다. 인증 안하셔도 됩니다. 기사에도 나가지 않습니다.” “퇴근시간 지하철 꼭 타시고요.” “아, 뱃지도 빼고요”

            그림 : 사무실에서 휠체어를 탄 국회의원과 필자가 이야기 나누고 있다. 상황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기 마련인지 나는 휠체어로 이동해보고 느꼈던 소외와 공포로 인해 구도심의 조형성과 다양함 이면에
            방치와 몰이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귀여워(×) ‘삭막해’
            이 동네는 엉뚱하군(×) ‘이 동네는 방치되어 있어.’
            회화적인 길이다(×)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림 : 휠체어를 탄 필자가 주차금지 표지가 여기저기 놓인 주차장, 크게 휘어진 좁은 길, 계단으로 이어진 길에서 난감해하고 있다. 기존의 생각에는 커다랗게 엑스표가 그어져 있고 바뀐 생각이 적혀 있다. 나는 그래서 요즘 우리 동네를 보면 그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정글 같아서 혼돈스럽고 시무룩할 뿐이다.

            끝.

            그림 : 필자는 ‘부우웅’ 차들이 지나다니고 킥보드와 주차금지 표시한 화분이 놓인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옆 골목에 예전이라면 채집했을 모르타르 계단 경사면이 보이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땅만 보며 걷는다.

전지

만화와 미술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공유하고 싶은 풍경을 그린다. 만화 『끙』 『오팔하우스』, ‘가족구술화 엄마편’ 『있을재 구슬옥』 『선명한 거리』를 쓰고 그렸고, 아카이브 드로잉 〈채집운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1 청년장애예술가양성사업 ‘너와나의 티키타카’에 관찰기록만화로 참여했다.
mademinority@naver.com
∙ 인스타그램 @hijeonji

2024년 9월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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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09: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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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었던 어떤 글보다 와 닿는 작품입니다. 학생들에게 소개해야 하겠네요.

2024-09-09 17: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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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시각이 저와 너무 닮아어 놀랐습니다.근데 더 놀란건 안양 구도심에서 제가 겪었던 일상과 같았단 점입니다. 이전의 한국이 전부 계획도시가 아닌 한집한집 정착해가며 이뤄진 동네-마을-도시가 된탓에,그동안 한국이 먹고살기 힘들었전탓에 장애인의 이동권이 전혀 반영조차 되지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변화를 위해 인식개선부터 시도해야하지 않을까싶습니다

2024-09-09 17: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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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만화를 보면서 장애인분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주변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 분들을 보면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많은 난관과 장애물들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2024-08-29 17: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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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어요- 저도 과거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로 휠체어생활을 했었는데 모든 게 높이 있고 위험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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