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제공하는 「공연장 접근성 가이드(A Guide to Theater Access)」는 장애인을 위한 공연 접근성 지원(수어해설, 음성해설, 자막)을 준비과정부터 공연 진행, 피드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시니어 매니저, 접근성 코디네이터, 마케팅이나 기술지원을 담당하는 스태프에게 필요한 사항을 직무별로 제시하였다. [웹진 이음]에서는 국내 공연예술 분야 접근성을 높이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도록 5회에 걸쳐 「공연장 접근성 가이드」의 내용과 함께 국내 현황을 살펴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청각장애인 인구는 37만 7천 명이다(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2021). 청각장애인 중 수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비율은 통계에서 각기 다르게 제시되어 그 비율을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장애 인구의 80%가량이 50대 이상의 노인성 장애인이므로, 실제로 수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전체 청각장애인의 20%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영국에서 수어통역이 필요한 공연의 예상 관객 수는 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주된 의사소통 형태는 영국 수어(British Sign Language, 이하 BSL)이다. 청각장애인 집단에는 부분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 영어를 배우고 난 후 청각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 BSL을 쓰는 난청인 등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공연장 접근성 가이드(A Guide to Theater Access)」 중 수어통역(British Sign Language) 부분을 바탕으로 공연 제작에서 수어통역을 준비할 때 길잡이가 될 만한 내용을 정리해본다.
기획 단계에서 고려할 점
기획 단계에서 수어통역을 고려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사안은 공연이 수어해설에 적합한지 여부이다. 대본이 있는 공연의 경우 수어통역에 적합하게 대본이 고안되어야 하며, 대본이 없는 공연은 통역이 가능할지 확인해야 한다. 수어통역사와 함께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공연을 진행할지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어통역을 준비할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수어통역사는 통역을 준비할 시간이, 연출가는 수어통역이 포함된 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계획된 공연의 경우 최대한 빨리 통역사와 연락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4~6개월 전에 연락하는 것이 가장 좋다. 수어통역사가 섭외되었다면 다음의 사항을 통역사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대에서 수어통역사의 위치
위 그림에서 객석의 노란 점은 청각장애인 관객, 무대의 노란 점은 수어통역사, 무대의 하얀 점은 배우이다. 공연 수어통역에는 여러 종류의 방식이 있다.
① 기존 접근방식 : 통역사가 무대 측면에 배치된다. 주로 뮤지컬이나 큰 규모의 공연에서 진행하는 방식이다. 청각장애인 관객은 이러한 방식의 통역을 볼 때 무대의 액션과 측면의 통역 사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② 통합 접근방식 : 일부 공연은 통역사를 공연에 통합한다. 통역사는 배우의 ‘그림자’가 되거나, 의상을 입거나, 멀티미디어 기술을 사용해 무대에 영상으로 내보낼 수 있다. 하나의 캐릭터나 코미디의 일부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공연에 수어를 통합하는 경우 연출가는 통역사와 협력하여 공연을 만들게 된다. 이 선택지를 위하여 청각장애인에게 자문을 받거나 청각장애인 배우가 공연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한다.
③ 팀 통역 방식 : 두 명 이상의 통역사가 무대에 오를 때의 통역 방식이다. 이 방식은 무대에 많은 배우가 등장하거나 무대가 두 개 이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에 적합하다. 통역사는 캐릭터를 나누어 갖거나 특정 배우의 그림자일 수 있다. 통역사가 그림자가 될 때, 배우의 성별, 연령, 국적을 기반으로 배정할 수 있다. 이 통역 스타일은 최근 미국과 호주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극단 파수꾼이 공연 <7분>에서 시도한 적 있다.
좌석 배치 및 예약
공연 좌석 배치 시에는 청각장애인에게 가장 적합한 좌석을 고려해야 해야 한다. 좌석은 통역사와 무대의 액션이 동시에 최대한 잘 보이는 좌석이어야 한다. 청각장애인이 배우와 통역사의 표정과 신체 언어를 볼 수 있도록 무대와 가까이 위치해야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고개를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긴 공연시간 동안 관람할 경우 관객이 불편할 수 있다. 맨 앞 좌석에서 몇 열 뒤의 좌석이 통역사와 배우를 모두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이다.
청각장애인 관객이 예약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전화 예약이 어려운 관객을 위해 예약 방법을 고안한다. 문자, 이메일, 혹은 웹사이트가 될 수 있다. 청각장애인 관객이 텍스트로 전화를 걸 수 있는 텍스트 연결 서비스(text relay services)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손말이음 통신중계서비스’(링크)를 제공하고 있다. 예약 담당자는 이러한 방식의 예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장애인 할인을 반드시 제공해야 할까? 이에 대해 극장이나 공연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장애인에게 할인을 제공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장애인이 통계적으로 비장애인보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며, 누구도 재정적인 이유로 문화 활동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장애인이 활동지원인 등 동반자와 동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할인이 동반자의 관람 비용을 면제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셋째,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공연을 관람하더라도 동일한 품질의 공연을 관람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할인은 불평등한 관극 경험에 동일한 관람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수 있다.
홍보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장에서 청각장애인이 접촉하게 될 담당자(일반적으로 접근성 담당자)를 지정해서 안내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이 실제로 특정한 누군가에게 연락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당자는 전화, 이메일, 혹은 현장에서 청각장애인 관객이 직접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며, 접근성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연장에서 접근성과 관련된 어떠한 질문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접근성 문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홍보물에 접근성 담당자의 이름, 연락처를 사진과 함께 추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담당자의 얼굴을 안다면 청각장애인이 더 편리하게 지원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어통역이 진행되는 날짜와 시간이 브로셔, 전단지, 포스터, 웹사이트에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청인을 포함하여 티켓을 예매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 공연에서 수어통역이 제공된다는 것을 알려, 원하는 경우 수어통역이 진행되지 않는 다른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SNS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시놉시스, 공연날짜, 티켓 금액, 공연장까지 가는 법 등 연극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정리한 수어통역 영상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에 0set 프로젝트는 <관람모드-있는 방식>의 공연 정보를 다음과 같이 유튜브에서 제공하기도 했다.
최종 준비
대사가 많은 복잡한 공연이라면 배우들과 함께 수어통역사가 리허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수어통역사와 연출가가 이에 대해 미리 함께 논의한다. 또한 통역사가 공연 전에 무대에서 워밍업을 할 수 있는지, 분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무대 위에 프롬프터가 있는지, 커튼콜을 언제 하는지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공연 전에 통역사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면 함께 일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통역사의 조명을 확인하고, 관객이 앉을 좌석의 가시성에 문제가 없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청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플롯의 개요를 별도로 제공할 수 있다. 스포일러를 할 필요는 없지만, 대강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아는 것이 청각장애인 관객이 공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 당일에 자신을 청각장애인이라고 드러내지 않는 관객이 몇 명 더 올 수도 있다고 대비하는 것이 좋다. 청각장애인 관객에게 비상상태가 있을 때 어떻게 안내할 수 있는지도 미리 고민해야 한다. 비상시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안내하기 전에 관객의 어깨를 두드려 주의를 끌 필요가 있다. 혹은 공연장 안팎의 조명을 껐다 켜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피드백
다음 공연을 위해 청각장애인 관객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접근성을 개선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은 공연 막간인 인터미션이나 공연이 끝난 직후이다. 관객에게 통역사가 잘 보였는지, 공연의 이야기를 잘 따라갈 수 있었는지 질문한다. 어떤 관객은 직접 피드백을 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으므로 공연 후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수어로 피드백 하는 것이 더 편할 수 있으므로, 수어 영상을 이메일로 보낼 수 있다. 각 공연 이후 수집된 모든 피드백의 기록을 확인하여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모니터링한다.
시사점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한 회차 이상 수어통역을 진행하는 공연이 많아지고 있고, 모든 회차 공연에 수어통역을 포함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수어통역 접근성 지침이 실제 창작자에게 매우 익숙한 루틴일 수 있다. 그러나 공연 접근성 지침이 창작자의 경험을 통해 주로 전달되고 있어 그간에 누적된 실천적 지혜가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못한다는 점, 배리어프리 공연을 새롭게 제작하고자 하는 창작자에게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접근성 지침에 창작자들이 쌓아온 지혜가 결합되어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공연장 접근성 가이드」가 제시하는 여러 지침이 더 많은 경험을 연결시키는 큰 틀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공연에서 접근성 지침을 준수하고 수어통역 등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만으로 공연의 접근성을 완전히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공연장을 찾는 청각장애인 관객들이 공연 환경과 공연의 메시지에 실제로 접근 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관객과 정확하게 소통하고 안내하기 위하여 다음을 유념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청각장애인 관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팁]
[참고자료 및 링크]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의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에 참여하였고, 공연으로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에 관심이 있다.
saojungym@daum.net
2021년 11월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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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통역을 하는 수어통역사입니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좋은 글이에요 한가지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조금 거슬립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농인 농아인이란 단어로 스스로를 지칭합니다 장애란 작은 범주가아닌 언어가 다른 수어문화를 가진 샤람들이죠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언어도 삶의방식도 다른 난청인 구화인과 동일시되는걸 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