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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대담] 취향의 발견, 몰두의 방해 나의 취향이 예술을 만날 때

  •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우지양 배우 
  • 등록일 2024-06-26
  • 조회수 588

이슈

취향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저마다의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누리기 위해서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인 환경도 갖춰져야 한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취향은 예술가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아하는 것에 진심이고 취향 만렙인 두 예술가가 만나 자신의 예술활동과 취향에 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개요

  • 일시2024년 6월 3일(월) 오전 10시

  • 장소모두예술극장 연습실1

  • 참석자 김시락 다원예술 창작자
    우지양 배우·인권활동가

  • 두 사람이 나란히 흡음보드 벽에 기대어 서서 미소짓고 있다.

    왼쪽부터 김시락, 우지양

마음이 끌리는 것을 찾아가 나를 드러내기

김시락만나서 반갑다. 나는 공연·전시 기획을 하고, 공연 퍼포머로도 활동하고 있다. 6월에 공연 〈어둠 속에, 풍경〉에 퍼포머로 출연하고,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기후 프로젝트 백스테이지 투어〉에서 ‘박쥐구실’이라는 팀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과 무용 〈부엔 카미노〉에 접근성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공연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예술 외에는 운동을 즐겨 한다. 며칠 전에도 유도 대회가 있어서 대전에 다녀왔다. 7월에 있을 공연의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거기에서도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던 중에 취향을 주제로 한 대담 제안이 와서 신기했다.

우지양나는 한국농인LGBT+라는 단체에서 인권 활동을 하고 있고,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나의 수어 이름은 턱에 검지를 갖다 대는 것이다. 예전에 턱 밑에 점이 있어서 ‘점이 있는 남자’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데, 지금은 점을 빼서 없다. (웃음) 최근에는 연극 〈맥베스〉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작년에 한국농인LGBT+에서 진행한 농인 성소수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청인 성소수자에 관한 자료는 많지만 농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직접 11명의 농인 성소수자를 만나 인터뷰했던 결과를 담았는데, 많은 농인 당사자와 비당사자가 참여했다. 성소수자 대안 수어를 만드는 작업도 하고, 농인 당사자 중심의 농접근권을 이야기하는 참여의견 보고서도 만들었다.

김시락우리 둘 다 바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창작작업 외에도 공연 모니터링을 꽤 많이 했는데, 올해는 접근성 스태프로 참여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뭔가 하나를 경험하고 조금씩 경험치가 쌓이면 더 관심 가지면서 활동이 확장되는 것 같다. 오늘 이야기의 키워드인 ‘취향’과도 연결될 것 같다. 취향이란 ‘마음이 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취향은 어떤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음식, 음악, 책 등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취향 속에는 사람들의 특징이 담겨 있어서, 취향을 알면 그 사람에 대해 그려보고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익스트림 스포츠나 록 음악을 좋아하면 활동적일 것 같다고 여기는 것처럼.

우지양처음에 사전질문지를 받고 난감했다. 동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한 가지로 정리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나는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질문을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수어통역사에게 부탁해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 나갔다. 취향이라는 건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하나로 정의하자면 취향이란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 나를 표현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시락뭐든 경험해 봐야 취향이 생기는 것 같다. 그전에는 추측하고 예상하는 거고, 내가 공연을 많이 보게 된 지 5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제대로 경험해 보기 전에는 나에게 잘 맞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경험하고 매력을 느끼고 나면 계속 해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취향 부자’이긴 한데, 가리는 게 별로 없고 낯선 걸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다. 오늘 음료도 살구 요거트 스무디가 독특한 메뉴라 일부러 골라봤다. 외국에 나가서도 한국 음식은 전혀 안 먹는다. 내향적이라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한다. 어제 만난 배우와도 이야기하면서 ‘크럼프’라는 춤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익숙한 건 편안해서 좋지만, 낯설고 새로운 것은 기대, 흥분, 재미를 준다. 최근 폴댄스를 배운 것도 취향을 발견하는 시도 중 하나였는데, 취향이 되진 못했다. 허벅지가 너무 아프더라. (웃음) 운동을 좋아해서 유도를 한 지도 2년 정도 되었다. 유도 자체는 내 취향이긴 한데, 급여를 받고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일처럼 느껴져 힘들긴 하다.

우지양와, 반갑다. 나도 유도를 6년 정도 했었다. 여성스러워 보인다는 틀을 깨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방황하고 꿈을 잃었던 시절에 친한 형이 권유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만두었고, 아직까지 선수로 나와달라고 연락이 온다. 하지만 예술을 하고 싶어서 거절하고 있다. 어떻게 예술계로 입문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도전! 슈퍼모델〉이라는 TV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거기에 나오는 모델 티아라 뱅크스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독특한 표현 방식, 뚜렷한 개성, 스타일링 등이 깊게 와닿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좋아한다는 걸 드러내진 못했다.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서 취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 살 무렵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때의 꿈을 다시 찾게 되었다. 드랙에 관심이 생겨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주 서툴렀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던 중에 드랙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만나서 배우게 됐다. 나에게는 ‘예술가’라는 단어가 아직 낯설다. 내 주변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활동을 계속할수록 나만의 정의가 생기는 것 같다. ‘그럼 나도 예술가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점점 활동 반경을 넓히게 되었고, ‘나’를 드러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퀴어’와 ‘농인’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드러낼지 항상 고민한다. 어딜 가든 낯설고, 이질감을 느끼는 존재가 된다. 더 이상 낯선 존재로 있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정체성을 예술에 더 녹여내는 것 같다.

취향이 나를 예술로 이끌던 순간

김시락나는 우연히 보러 간 뮤지컬에서 배우의 노래가 너무 마음에 와닿은 것을 계기로 뮤지컬을 좋아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예술창작을 하게 된 계기는 이진엽 연출의 〈커뮤니티 대소동〉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이진엽 연출의 공연을 몇 번 보러 갔었는데, 나를 기억하고 먼저 함께하자고 제안해줬다. 경험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라고 해서 합류할 수 있었다. 그걸 계기로 이후에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취향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발전시켜서 작업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루어가는 것 같다. 많은 경험을 하고, 그중 와닿는 경험이 나의 그물망에 건져지고, 그것들이 섞이면서 새로운 작업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올해 2월 ‘퓨처 와이드 오픈: 신기술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 쇼케이스’ 무대에 올렸던 〈들리는 춤〉도 그랬다. 접촉, 즉흥 움직임 활동을 하다 보니, 내가 할 때는 재미있는데 관객으로서는 재미를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 관객도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감각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시작하게 된 작업으로, 관람객이 직접 감각할 수 있는 전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획했다. 작년에 했던 전시 중심 다원예술 〈동시 접속〉도 같은 고민에서 출발했다. 예술작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했던 활동과 대화들이 모티브가 되거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양분이 되는 것 같다.

우지양평소에 “너는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더 드러내는 것이고, 그들이 나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소수자 중에는 취향 드러내기를 꺼리거나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있다. 누군가가 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먼저 시도하면 그 영향을 받아서 취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대화를 하기 위해서 수어통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계가 생겨도 최소한의 대화만 하게 되고, 대화의 기회 자체를 줄이게 되는 측면이 있다. 사실 많은 기회가 다수에게 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정체성 때문에 사람들이 매우 낯설어한다. 작업 기회가 주어져도 퀴어로서의 작업, 농인으로서의 작업은 있지만, 농인 퀴어로서의 작업은 없다. 어느 한 가지의 정체성이 아닌 ‘농인 퀴어’로서 활동할 기회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김시락세상에는 대중적인 취향도 있고 소수의 취향도 있다. 소수의 취향을 배제하고 차별하면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 제약이 되고, 그로 인해 접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니, 그 수가 더욱 적어지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대중문화가 시대의 흐름이나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획일화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취향이 쉽게 확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류가 아닌 취향은 혼자서 혹은 숨어서 즐기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나 혼자만 좋아하는 것은 없더라. 수가 적더라도 누군가는 있다. 그래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동료, 친구들을 만나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적으로 안정되거나 정서적으로 고양될 수 있으니까. 나 역시 공연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관련한 일도 하게 되었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면서 서로의 취향이 넓어지는 선순환적 관계가 되었다. 마이너한 취향을 억누르는 사회 분위기가 개선될 필요도 있지만, 반대로 함께 취향을 공유할 사람들을 만나면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에는 기술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특정 분야의 관심사나 취향을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소위 ‘핫’한 것들을 보여주고, 그것들을 보다 보면 연관 콘텐츠가 계속 노출되면서 확장해 주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우지양별명에도 취향이 담기는 것 같다. 나의 드랙 네임이 ‘비취양’인데, 고향이 부산이라 Beach, 바다라는 뜻과 함께 Bitch라는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한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름의 ‘밝을 양(亮)’을 써서 농인, 퀴어와 같은 정체성이 음지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소외된 사람들을 ‘밝게 비추면서’ 활동하고자 만든 이름이다. 어렸을 때 ‘세일러문’을 좋아해서 수어 이름도 세일러문의 손동작 비슷하게 가져왔다.

김시락재치 있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어렸을 때 내 별명은 ‘도시락’이었다. 공연팀에서 ‘푸렴’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했다. 직접 만든 건 아니고, 동료가 나를 보면 염소가 생각난다고 지어준 거다. 당시 내가 비건까지는 아니고 채식 비중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어서 ‘풀 뜯는 염소’, 줄여서 ‘푸렴’이 되었다. (웃음)

취향과 문화의 공동체

김시락농문화처럼 시각장애인들도 소수자이기 때문에,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이 있으면 문화와 취향이 강화되고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얼마 전에 농인들은 손을 접촉해서 건배한다는 걸 알게 됐는데, 시각장애인들은 잔을 부딪치는 소리를 좋아한다. 이것도 장애 특성이 반영된 취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우지양‘공동체’라는 지점에서는 강화되는 취향이 있다. 어깨를 두드려서 나를 부르고, 수어로 대화하는 자연스러운 농문화 공동체다. 청인공동체 안에서는 계속 신경 써야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늘 막히는 경험을 한다. 내가 먼저 두드려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나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웠으면 좋겠다. 다수의 경험은 늘 청인 사회 안에서만 공유되고 홍보된다. 농인에게도 홍보될 수 있는 홍보물을 만들고 농인이 볼 수 있는 곳에 홍보하면 우리가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면서 취향으로 연결될 수 있을 거다.

김시락흐름이나 유행도 좋지만 편중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에서 그런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취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열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낯설고 어색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열린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

우지양그런데 농인과의 협업 경험이 있는지 궁금하다. 농인들의 손등 건배를 알고 있어서 놀랐다.

김시락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 접근성 스태프로 함께 참여한 수어통역사가 알려줬다. 사실 음성언어를 쓰다 보니 농인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중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또는 관계자들을 통해 알게 된 경우가 있다. 내가 운동하는 체육관에서 농인 선수들도 함께 운동하는데, 수어통역사가 없다 보니 직접 소통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시각장애인에게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그 안에서 어울리는 게 있지만, 커뮤니티 안에서의 친밀도나 유대감 같은 건 다른 장애 유형들이 더 큰 것 같다. 공연 소식이 있어도 시각장애인들은 각자 보러 가거나 숫자 자체가 적다. 반면 농인들은 여러 명이 함께 보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 유형의 사람들보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좀 더 강한 것 같다. 접근성 측면에서도, 농인들이 수어통역에 호불호가 있는 것처럼, 시각장애인들도 음성해설에 대한 취향이 다르다. 풍성한 감정을 담은 해설이 좋은 사람도 있고, 건조하고 명료한 해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우지양수어통역에 대해 농인의 호불호가 있다거나 취향이 있다는 것은 수어통역사의 핑계에 불과하다. 수준 이하의 수어통역에 농인이 문제 제기를 하면, 수어통역사는 이것을 그 농인의 호불호나 취향으로 둘러댄다. 취향과 수어 실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농인은 수어라는 언어를 쓰기 때문에 대화를 조금만 해봐도 바로 안다. 한국어를 손으로 옮겨 놓은 손짓이 있다. 한국 수어가 전혀 아니고 독립된 언어도 아니기에 ‘수지 한국어’라고 부른다. 상대방이 수지 한국어를 쓰면 바로 수어 실력을 알 수 있고, 짧은 대화만 나눠봐도 수어통역에 대한 스킬을 느낄 수 있다. 농인이 그 문제를 인지하고 이야기하려 해도 수어통역사를 통하지 않으면 직접 앞에 있는 청인이나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수어통역사는 이것을 이용해 수어를 취향의 영역이라고 둘러댄다. 어떤 농인은 어쩔 수 없이 상대가 수어를 잘하든 못하든 맞춰주면서 이해해 준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I NAME JIYANG(저의 이름은 지양입니다.)” 이 영어 통역을 두고 호불호나 취향이 안 맞는다고 말하는가? 아니다. 취향이나 호불호를 논하려면 일단 이해는 할 수 있는 통역을 한 후 그것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취향이나 호불호로 이야기될 수 있는 수어통역사가 극소수다.

좁은 선택지를 넘어서기 위해

김시락취향을 만드는 데 시간과 금전적으로 제한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골프나 승마는 모두가 즐기기엔 부담스러운 스포츠다. 그리고 취향도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메탈 음악을 좋아하게 됐을 때, 입문용으로 듣기 좋은 음악이 있다. 그 음악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매력을 느끼면서 취향을 확장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음악을 접하게 되면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충분히 탐색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마라탕, 탕후루처럼 무언가 유행한다 싶으면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버리는 식이니, 마이너한 것을 체험할 기회가 적어진다. 물론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개척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과 다양성이 가득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면에서도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환경을 조성하고 확산하는 면에서는 훨씬 더 부족한 것 같다.

우지양나에게 ‘농접근권’은 취향과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퀴어 문화는 청인들이 만들어놓은 것이 있다. 나는 농문화와 퀴어문화, 이렇게 양쪽을 오가며 활동하는데, 사실 청문화에는 다가가기 어렵다. 청인 중심이기 때문에 거절도 당하고, 수어통역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필담도 있지만, 나에게 한글은 편한 언어가 아니라 포기하게 된다. 농인으로서 활동하고자 하면 소수자이기 때문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결국 농사회에서든 청사회에서든 양보하게 된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다. 굳이 말하자면 청인의 퀴어문화에서는 퀴어로서는 환영받지만 농인으로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업에 들어가든지 내가 ‘처음’이다. 누군가 이미 만들어놓은 문화 속에서 예술가로서 활동하고 싶은데, 늘 내가 처음인 상황에 놓이다 보니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배리어프리도 항상 한글 표기 기준이다. 나는 제1언어가 수어라서 꼭 수어로 소통하고자 한다. 그런데 한글 표기가 있으면 수어가 없는 경우가 많고, 수어로 소통하는 경우에도 수어통역사가 한국 수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통역할 때도 있다. 이건 주최 측과 수어통역사 간에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력에 대한 점검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한편 문자통역만 있어도 되지 않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이것도 취향의 차이다. 누군가는 수어와 문자통역을 동시에 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수어를 원할 수도 있다. 배려가 필요하다. 이 공간만 해도 많은 정보가 있지만 수어 정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처럼 나에겐 취향을 경험하고 활동하는 데 있어서 수어가 항상 첫 번째 문턱이다.

김시락나 역시 시각장애 때문에 무언가 경험하고 체험하는 데 제약이 많다. 유도를 배울 때도 체육관에 전화하면 안전상의 이유 등을 핑계로 여러 번 거절당했다. 다른 시각장애인이 다녔던 곳을 가면 그나마 편하면서도 부담된다. 도움이나 안내가 필요한데 시각장애인이 여러 명 있으면 번거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무작정 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곳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다. 양궁이나 사격도 지인들과 함께 갔었는데, 아마 혼자였다면 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형성되기 어려운 취향도 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경우 색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전맹임에도 색이 가진 고정되거나 통일된 인식이 있는 사람도 있다. 또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어떤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부분 이상형을 물어보면 연예인의 외모를 예시로 드는데, 시각장애인들은 목소리로 취향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으로서 다르게 형성되거나 접근이 어려운 취향이 있다.

우지양나도 ‘당신 때문에 다른 (청인) 수강생들의 진도가 늦어지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거절당한 적이 있다. 농인 수강생은 여러 명인데 수어통역사는 한 명이라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다. 농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수어통역이 필요한데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고, 일할 때만 근로지원을 받을 수 있다.

김시락앞서 공연에서 수어통역 같은 접근성에 있어서 수어통역사의 역량이나 연출진과의 소통 문제 등을 얘기했는데, 관련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있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는 농인이 직접 연출하고 감독하는 영화나 연극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시도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거기에 청인의 접근성을 위해 음성 더빙이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우지양기획 단계부터 농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 의사소통 지원사업, 수어통역센터 외에도 앱으로 원하는 수어통역사를 연결해서 보내주는 사업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정부에서 이 사업으로 인해 수어통역센터가 없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갈등이 생겼다. 현재 수어통역센터에서는 4명의 수어통역사가 300명의 농인을 담당해야 한다. 이외에도 농인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끙끙 앓고만 있다.

나누는 재미, 함께하는 즐거움을 위해

김시락나는 새로운 취향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는데,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앞으로 좀 더 시도해보고 싶은 건 혼자 영어권 국가로 여행 가는 것이다. 혼자서는 일본에 여러 번 가 봤고 친구와는 중화권 국가도 여러 차례 가 봤지만, 아직 아시아를 벗어나 본 적은 없다. 그곳에서 식문화나 사람들의 태도 같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취향 영업’도 많이 한다. 어제도 공연과 관련해 인터뷰할 일이 있어 집에서 진행했는데, 라면 얘기를 하다가 풀무원 비건 라면이 맛있다고 영업했다. 집에 있는 것 몇 개씩 챙겨드리기도 했다. 취향 영업도 나의 재미 중 하나다. (웃음)
생각해보면, 취향을 함께할 사람을 많이 못 만나서 혼자 다니게 되는 것 같다. 뮤지컬과 연극을 두루 좋아하는 사람, 같이 보러 다닐 만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공연을 보러 갔다가 만난 사람과 우연히 연락처를 주고받아 다른 공연을 함께 보러 간 적도 있긴 했다. 근데 공연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다른 취향은 조금 안 맞아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취향이 같은지 확인하고 찾아보는 과정이 쉽지 않다. 혼자서 취향을 즐기는 사람 중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친구, 동료가 되면 좋지 않을까.

우지양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큰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인・농인 상관없이 함께 어우러져 큰 무대에서 드랙 공연을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DRAG×트랜스 이갈리아〉라는 공연에 수어통역으로 참여했었는데, 앞으로는 아티스트로 무대에 서보고 싶다. 그리고 농인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도 만들거나 출연해 보고 싶다. 일본, 중국에는 농인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다.
늘 혼자 다녔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하는 건 너무 외롭고 어렵다. 혼자 어딘가 다녀와서 SNS에 올려도 사람들은 잠시 관심을 가지는 게 전부다. 그래서 이제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고 싶다. 예술을 우연히 접하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렇게 농인 예술가, 청인 예술가들과의 관계도 확장하고 동료들을 만들고 싶다.

  • 김시락 창작자가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무뤂에 해금을 올려 놓고 연주하고 있다.

    해금 켜는 김시락

  • 머리에 은발의 가발을 쓴 김시락 창작자가 실물 크기의 아인슈타인 밀랍 인형 어깨에 한 팔을 올리고 있다.

    일본 도쿄 마담 투소에서 아인슈타인과 기념촬영(김시락)

  • 우지양 배우가 연단에 서서 수어로 발표하고 있다. 발표 스크린 옆에는 무지개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국농인LGBT+ ‘농인 성소수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발표하는 우지양

  • 녹색 드레스를 입은 드랙 아티스트 옆에서 드랙 분장을 하고 파란색 정장 치마를 입은 우지양 배우가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DRAG×트랜스 이갈리아〉(2021) 수어통역(우지양)

김시락

소리와 움직임, 그리고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다원 창작자이다. 소리 나지 않는 것에 소리를 더하거나 들리지 않던 소리를 발견하고, 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을 즐긴다. 다양한 몸과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형태와 움직임에 관심이 많고, 이를 시각 외에 다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시각장애의 특성상 정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방을 듣고 느끼는데, 매사를 이와 같은 태도로 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동기획 작업으로 팝업식사담 〈카오스토어〉, 움직임 워크숍 〈봉in해제〉 〈무성한성무〉, 소리창작 워크숍 〈상상경작〉, 이동권 연대기 〈남산탈출기〉가 있고, 전시 중심 다원예술 〈동시 접속〉을 기획·제작했다. 〈커뮤니티 대소동〉 〈어둠 속에, 풍경〉에 출연했다.
qpseh0113@naver.com

우지양

핸드스피크 배우, 인권활동가. 농인 정체성과 성소수자 정체성의 교차성에 주목하는 인권단체 한국농인LGBT+ 설립부터 함께했고 상임활동가로 활동 중인 농인이자 퀴어다. 대안 수어를 만들고 국내외 농문화 리서치와 한국수어통역, 국제수화통역을 한다. 주요 출연작으로 창작수어 뮤지컬 〈공범을 찾습니다〉 〈퍽킹젠더〉 〈추락Ⅱ〉 〈란들의 일기〉 〈서울 드랙 캬바레〉 〈맥베스〉 등이 있다. 〈DRAG×트랜스 이갈리아〉,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 〈곡비〉에 수어통역으로 참여했다. 극영화 〈대답〉(2008)을 감독했고, 영상작 〈주시하는 몸〉, 〈환대의 조각들–크로스!〉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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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트리

수어통역.김보석 수어통역사
정리.박희연 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teph__y@naver.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김시락, 우지양

2024년 7월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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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7 10: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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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가, 핸드 스피크 배우, 얼굴이 아닌 목소리의 이상형, 농인 퀴어, 수지 한국어, 대안 수어 .. 제가 몰랐던 낯선 말들과 취향의 대담! 잘 읽었습니다. 다르게 감각하는 두 사람이 교차하는 이야기가 즐거웠습니다.

2024-07-10 12: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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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통해 농접근권, 수어통역사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취향과 취미를 만들어갈 때 장애가 문제가 될 수 없도록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드네요. 두 분의 공연과 수어 인사 보고 싶네요!!

2024-07-05 0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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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취향 이야기 재밌게 읽었어요. 좋아하는 것 많고, 좋아하는 것이 다양한 연결을 만들고, 나의 일이 되면 더 신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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