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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 2024 〈인정투쟁; 예술가 편〉

리뷰 장애배우의 몸으로 전달되는 예술가의 분투

  • 강진경 작가
  • 등록일 2024-06-26
  • 조회수117

리뷰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이연주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2019년 초연을 했고, 5년이 지나 올해 재연을 하게 되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운영하는 두산인문극장은 매년 하나의 주제에 따라 공연, 전시, 강연을 시리즈로 기획하는데 올해는 ‘권리’를 주제로 하여 〈인정투쟁; 예술가 편〉도 이 기획에 포함되어 있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을 보기 위해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를 찾았을 때 새로운 무대의 인상에 사뭇 놀랐다. 이곳에서 공연을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객석에 앉으면 뭔가 강연장에 온 느낌이 강했었다. 이번에는 무대를 사방으로 쓰기 위해 무대와 객석으로 구분되어 있던 공간을 넓게 펼쳐 사면 객석의 열린 무대가 되었는데, 훨씬 개방적인 느낌이었고 동시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되는데, 시놉시스에 따르면 “한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여섯 명의 배우가 각각 예술가1, 예술가2, 예술가3 등을 맡아 때로는 독립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러 배우가 예술가 한 명을 나눠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필로그이자 프롤로그인 커튼콜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나는 예술가다”라는 선언으로 1막이 시작된다. 1막에서 ‘나’는 예술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다가 극장 청소나 기술 오퍼레이터 같은 일로 극장과 예술계에 진입하는 방식을 시도한다. 2막에서 ‘나’는 ‘너’로 이름을 바꾸고 ‘선생님’을 만나서 각종 워크숍과 가르침을 받으며 예술을 연마한다. 3막에서는 다시 이름을 ‘그’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자 예술가5처럼 동의할 수 없어 떠나는 인물도 있다. 어쨌든 ‘그’는 그토록 바라던 예술계에 진입하고 다른 배우들과 공연계에 대한 자조적인 커뮤니티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도입부에 나왔던 커튼콜 장면이 다시 한번 등장하며 관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연극은 끝난다.

초연은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 공간을 사면 객석으로 구성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가운데를 무대로 두면서 여러 지점에서 배우들의 등퇴장이 가능해졌고 휠체어 동선도 더욱 역동적으로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와 관객이, 관객과 관객이 서로를 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은 이 공연에서 강조되는 ‘보는 것, 보이는 것’에 대해 의식하게 만들면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극 중 대사에도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105분에 이르는 공연에서 관객은 이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예술가’라는 점만 강조되는 이 추상적인 인물에게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예술인 패스 등록을 시도하는 모습이나 권위적인 모습의 선배, 스승에게 예술론을 듣는 에피소드보다 배우들의 몸이었다. 극단 애인 배우들과 김원영 배우로 구성된 출연진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고, 각각 휠체어를 타고 또는 걸으며 연기할 때 다른 리듬의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배우들이 서로 교차하며 움직일 때도 그 역동의 세기와 속도가 조화롭다. 또한 여러 배우가 반복적인 대사를 연달아 말하거나 서로 겹치는 대사를 할 때도 언어장애로 생기는 호흡의 특성이나 어긋나는 박자는 장애배우가 전하는 대사의 맛을 만들어낸다.

이 공연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던지지만, (장애)배우들의 인정투쟁이라는 막이 깔려 있기도 하다. 극 안에서 ‘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지만, 예술가의 인정투쟁 이야기는 장애-배우의 몸을 경유해서 전달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 극단에서 장애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존 희곡을 장애의 관점으로 표현하거나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난 몇 년간 비장애인 극단이나 연출가들과의 작업에서 장애배우들이 장애인이 아닌 인물 혹은 비인물을 연기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 공연이 극단 애인과 오래 작업해 온 연출가가 장애배우들을 고려하여 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설정은 의도된 방식일 것이다.

사실 장애-증명-인정투쟁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키워드이다. 장애인의 삶은 제도에 의해, 가족에 의해, 동시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시민들에 의해 계속해서 ‘증명’을 요구받는다. 어떤 순간에는 얼마나 중증 장애인인지를,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또 어떤 순간에는 장애인이지만 그럼에도 일을, 사랑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소수자의 삶이 그럴 수밖에 없듯이, 많은 장애인에겐 일상이 투쟁이기 때문에 장애배우의 몸으로 표현된 극에서 무대 위 예술가의 인정투쟁의 의미는 더욱 두텁게 전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장애배우들이 표현한다는 점 외에 아무런 전사가 없고 사회적 맥락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예술가’라는 이름으로만 호명되는 인물이 나에게는 다소 난감하게 다가왔다. “극장 밖을 보라”는 외침이 대사로도 나오지만, 공연이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예술가’의 모습이 사회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장애여성 단체에서 활동할 때 동료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애정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예술적 실천의 방식과 의미를 고민해 왔다. 그렇다면 그 고민은 ‘예술가’의 분투와는 다른 결이었을까? 공연이 끝나고 나자, 나는 우리에게 증명을 요구하는 이 사회는 과연 인정받을 만한 곳인지를 오히려 묻고 싶어졌다.

  • 무대 양쪽에서 조명이 바닥에 역삼각형 모양으로 비추고, 그곳에 휠체어를 타거나 서 있는 배우들이 사방을 향해 있다.
  • 배우들이 무대 곳곳에 흩어져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 앞에 있는 백우람 배우는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을 땅에 짚은 자세다.
  • 휠체어를 탄 배우와 걷는 배우가 짝을 이뤄 움직임을 하고 있다.
  • 휠체어를 탄 배우들과 바닥에 주저앉은 배우들이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한쪽에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

두산아트센터|2024.5.28.~6.15.|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게 되는 예술가의 수행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상호작용을 그린 작품으로, 2019년 초연했다. 인간 주체 사이의 사회적 투쟁과 갈등을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바라보고 상호성을 성찰하는 개념을 끌어온 이 작품은, 한 예술가의 여정을 통해서 무대와 객석, 예술가의 권리 획득의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공연정보

강진경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했다. 『어쩌면 이상한 몸』과 『시설사회』를 함께 썼고,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을 함께 번역했다.
prostranstvo9505@gmail.com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

2024년 7월 (54호)

상세내용

리뷰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이연주가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2019년 초연을 했고, 5년이 지나 올해 재연을 하게 되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운영하는 두산인문극장은 매년 하나의 주제에 따라 공연, 전시, 강연을 시리즈로 기획하는데 올해는 ‘권리’를 주제로 하여 〈인정투쟁; 예술가 편〉도 이 기획에 포함되어 있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을 보기 위해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를 찾았을 때 새로운 무대의 인상에 사뭇 놀랐다. 이곳에서 공연을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객석에 앉으면 뭔가 강연장에 온 느낌이 강했었다. 이번에는 무대를 사방으로 쓰기 위해 무대와 객석으로 구분되어 있던 공간을 넓게 펼쳐 사면 객석의 열린 무대가 되었는데, 훨씬 개방적인 느낌이었고 동시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되는데, 시놉시스에 따르면 “한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여섯 명의 배우가 각각 예술가1, 예술가2, 예술가3 등을 맡아 때로는 독립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러 배우가 예술가 한 명을 나눠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필로그이자 프롤로그인 커튼콜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나는 예술가다”라는 선언으로 1막이 시작된다. 1막에서 ‘나’는 예술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다가 극장 청소나 기술 오퍼레이터 같은 일로 극장과 예술계에 진입하는 방식을 시도한다. 2막에서 ‘나’는 ‘너’로 이름을 바꾸고 ‘선생님’을 만나서 각종 워크숍과 가르침을 받으며 예술을 연마한다. 3막에서는 다시 이름을 ‘그’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자 예술가5처럼 동의할 수 없어 떠나는 인물도 있다. 어쨌든 ‘그’는 그토록 바라던 예술계에 진입하고 다른 배우들과 공연계에 대한 자조적인 커뮤니티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도입부에 나왔던 커튼콜 장면이 다시 한번 등장하며 관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연극은 끝난다.

초연은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 공간을 사면 객석으로 구성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가운데를 무대로 두면서 여러 지점에서 배우들의 등퇴장이 가능해졌고 휠체어 동선도 더욱 역동적으로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와 관객이, 관객과 관객이 서로를 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은 이 공연에서 강조되는 ‘보는 것, 보이는 것’에 대해 의식하게 만들면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극 중 대사에도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105분에 이르는 공연에서 관객은 이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예술가’라는 점만 강조되는 이 추상적인 인물에게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예술인 패스 등록을 시도하는 모습이나 권위적인 모습의 선배, 스승에게 예술론을 듣는 에피소드보다 배우들의 몸이었다. 극단 애인 배우들과 김원영 배우로 구성된 출연진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고, 각각 휠체어를 타고 또는 걸으며 연기할 때 다른 리듬의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배우들이 서로 교차하며 움직일 때도 그 역동의 세기와 속도가 조화롭다. 또한 여러 배우가 반복적인 대사를 연달아 말하거나 서로 겹치는 대사를 할 때도 언어장애로 생기는 호흡의 특성이나 어긋나는 박자는 장애배우가 전하는 대사의 맛을 만들어낸다.

이 공연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던지지만, (장애)배우들의 인정투쟁이라는 막이 깔려 있기도 하다. 극 안에서 ‘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지만, 예술가의 인정투쟁 이야기는 장애-배우의 몸을 경유해서 전달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 극단에서 장애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존 희곡을 장애의 관점으로 표현하거나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난 몇 년간 비장애인 극단이나 연출가들과의 작업에서 장애배우들이 장애인이 아닌 인물 혹은 비인물을 연기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 공연이 극단 애인과 오래 작업해 온 연출가가 장애배우들을 고려하여 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정투쟁; 예술가 편〉의 설정은 의도된 방식일 것이다.

사실 장애-증명-인정투쟁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키워드이다. 장애인의 삶은 제도에 의해, 가족에 의해, 동시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시민들에 의해 계속해서 ‘증명’을 요구받는다. 어떤 순간에는 얼마나 중증 장애인인지를,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반면 또 어떤 순간에는 장애인이지만 그럼에도 일을, 사랑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소수자의 삶이 그럴 수밖에 없듯이, 많은 장애인에겐 일상이 투쟁이기 때문에 장애배우의 몸으로 표현된 극에서 무대 위 예술가의 인정투쟁의 의미는 더욱 두텁게 전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장애배우들이 표현한다는 점 외에 아무런 전사가 없고 사회적 맥락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예술가’라는 이름으로만 호명되는 인물이 나에게는 다소 난감하게 다가왔다. “극장 밖을 보라”는 외침이 대사로도 나오지만, 공연이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예술가’의 모습이 사회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장애여성 단체에서 활동할 때 동료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애정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예술적 실천의 방식과 의미를 고민해 왔다. 그렇다면 그 고민은 ‘예술가’의 분투와는 다른 결이었을까? 공연이 끝나고 나자, 나는 우리에게 증명을 요구하는 이 사회는 과연 인정받을 만한 곳인지를 오히려 묻고 싶어졌다.

  • 무대 양쪽에서 조명이 바닥에 역삼각형 모양으로 비추고, 그곳에 휠체어를 타거나 서 있는 배우들이 사방을 향해 있다.
  • 배우들이 무대 곳곳에 흩어져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 앞에 있는 백우람 배우는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을 땅에 짚은 자세다.
  • 휠체어를 탄 배우와 걷는 배우가 짝을 이뤄 움직임을 하고 있다.
  • 휠체어를 탄 배우들과 바닥에 주저앉은 배우들이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한쪽에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

두산아트센터|2024.5.28.~6.15.|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존재를 증명하게 되는 예술가의 수행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상호작용을 그린 작품으로, 2019년 초연했다. 인간 주체 사이의 사회적 투쟁과 갈등을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바라보고 상호성을 성찰하는 개념을 끌어온 이 작품은, 한 예술가의 여정을 통해서 무대와 객석, 예술가의 권리 획득의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게 한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공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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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했다. 『어쩌면 이상한 몸』과 『시설사회』를 함께 썼고,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을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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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

2024년 7월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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