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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하 미술작가 모순된 세계를 연결하는 구원과 치유

  • 심지언 월간미술 편집장
  • 등록일 2024-06-26
  • 조회수 668

인터뷰

‘조현(調絃)’의 사전적인 의미는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조현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던 20대 후반 조현병이 발병했다는 이정하 작가를 만났다. 이정하 작가는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배제와 차별을 타파하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단체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을 설립하여 당사자들이 함께 연대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동료 정신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 전시회를 여는 등 작가들의 연대에도 열성적이었다. 파도손이 위치한 을지로의 건물 한 층에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는 작업실을 마련해 두고, 인권운동가이자 작가로서의 시간을 채워 나가고 있는 이정하 작가를 만나 그동안의 활동과 예술의 역할과 의미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 이정하 작가가 자신의 작품 〈환청〉과 〈수박파수꾼〉 사이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의자에 앉아 있다.

미술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활동했다. 어떤 계기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고 애니메이션 디렉터로서 어떤 활동을 했나? 발병 이전의 활동에 대해 말해 달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환경이 좋지 않아 졸업하지 못했다. 그래픽 툴을 다룰 줄 알아 게임 회사,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가 그래픽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였다. 〈로보카 폴리〉, 〈치로와 친구들〉, 〈아치와 씨팍〉 등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6년 정도 했는데, 애니메이션의 기획과 세계관을 설계하는 역할이었다. 그 일을 무척 좋아했는데, 과도한 업무량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잠도 못 자는 날이 계속되면서 조현병이 발병하게 되었다. 1년 정도 입원과 치료를 거친 후 잠시 복귀했다가, 재발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암흑 같은 시간을 10년 정도 보냈다.

발병 이후에 치료 과정과 사회적 차별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정신장애인들이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

처음 발병 이후 다시 업무로 복귀를 할 수 있었던 건 옆에서 지지해 준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지지자가 사라지면서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병과는 별개로 사회적 차별로 인해 감옥에 갇힌 듯한 시간이 무척 힘들다. 특히 강제 입원 과정에서 굉장한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입원 과정부터 그 안에서 지내는 시간 그리고 퇴원하고 지역사회로 복귀하는 모든 시간이 학대에 가까웠다. 그동안 나에게는 사회가 없는 것과 같았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사회가 그를 도와줘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강제로 투약하고 강박하고, 또 의사 표현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가 이어졌다. 그 시간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든 시기를 다시 떠올리게 해서 죄송하다. ‘파도손’이라는 귀하고 중요한 활동을 하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에 관해 소개해 달라.

파도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단체로 당사자의 주권 회복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당사자 중심의 정책과 필요한 서비스, 일자리 등 사회적 기회를 제공하는 다방면의 활동을 한다. 그래서 정치·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당사자 단체이다.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오해와 편견이 많은 것 같다.

언론 등에서 조현병을 범죄와 연계하여 부각하다 보니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조현병이나 정신장애를 앓는 사람 대다수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들로,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위험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가장 큰 오해다. 그리고 조현병에 대한 인식 부족도 문제다. 누구나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듯이, 정신질환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4명 중 1명이 일생에 한 번은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가 아닌데,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위험에 직면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직접 조현병 환자를 만나고 이들이 사회에서 섞이고 노출되는 등 다양한 기회가 더 많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파도칠 때 서로 잡는 손’이라는 의미의 파도손은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는 조직으로 보인다. 당사자 주체의 치유와 재기를 위한 파도손의 활동은 어떤 것이 있나?

나 자신이 동료들을 통해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정신장애는 상태가 악화되는 급성기가 있다. 예전에는 급성기에 강제 입원을 반복했는데, 동료지원가 덕분에 입원하지 않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진정되기까지 동료들이 곁에 계속 머무르며 도움을 주어 격리당하지 않고 사회 안에서 인권 침해 없이 견뎌냈다. 대처 방안이 달라지니 회복 속도가 무척 빨랐다. 개인적으로 무척 놀라운 경험이었다. 더 이상 내 의사와 반하는 강제 입원과 격리 없이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안심이었고,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정책적·사회적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특히 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며 의료진과의 소통을 통한 변화를 끌어냈다. 어떤 계기로, 어떤 내용을 발표하게 되었나? 그리고 그 성과는 무엇인가?

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몇 차례 발표했다. 첫 번째는 강제 입원이 당사자에게 남기는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동료지원가의 정신건강서비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신건강서비스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료진이 있었고, 그분들과 함께 회복에 도움을 주는 동료지원가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 지금도 치료법에 대해서는 간극이 있지만, 이제 당사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의료진이 많이 생겼고,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는 분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조율하면서 정부 차원의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현장이 변해가는 데 이런 활동들이 기여한 것 같다.

발병 이후 초반에는 인권운동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최근에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미술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투병하는 와중에도 뭔가를 계속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주었는데, 무엇보다 증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했고, 또 학대나 차별 등으로부터 나의 인간성을 지켜주었다.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초기 10년간은 하얀 종이에 펜으로 낙서처럼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고발적인 내용을 그렸다. 회화 작업을 시작한 건, 회화야말로 진짜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달리 직접 재료의 물성, 즉 물과 기름, 물감 등 질감을 느끼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회화가 가진 단일성, 하나밖에 없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지금은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고귀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초기에 재료 구입이 어려웠다고 했는데, 장애예술인의 활동을 돕는 공공이나 민간의 지원이 있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처음으로 재료비를 지원받았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준 고마운 기관이다. 이후 창작 활동뿐 아니라 전시를 개최할 때도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련의 회복 과정으로 보인다. 본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괴물을 만나면 나의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무척 힘들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나만의 성찰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물이나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 수양도 많이 했고 안정감도 많이 찾았다. 괴물을 만나 벌이는 나만의 사투에서 날 구원해 준 것 중 하나가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경험한 환청과 환시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떤 것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고, 작업을 전개해 가는 과정은 어떠한가?

나에게 증상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여기 지구의 3차원 세상에서 사는 경험보다 더 어마어마한 세계를 직면하고 만나고 드나들게 한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세상이 보이는데, 증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명확하고 굉장히 명징하다. 그중 더 강렬하고 뚜렷한 장면이 있는데, 그런 뚜렷한 경험들이 작품화된다. 내가 사는 세계와 내가 경험하는 세계가 공존하듯, 여러 장면이 동시에 펼쳐진다. 그림은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다시 재해석하는 과정으로, 스케치하면서 화면을 구성하고 서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친다. 내 작품 중 〈진실의 사과 프로젝트〉에는 특히 많은 서사가 동시에 펼쳐진다. 내가 직접 느끼고 본 세계를 모두 한 화면에 담았다. 우주도 있고, 무속적인 요소도 있고, 동화에 나오는 동물도 등장하고, 중앙에 있는 눈으로 수많은 사람이 걸어 들어가는 장면도 있다. 명확한 장면을 중심으로 스케치를 통해 전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한 화면 안에서 많은 스토리를 한꺼번에 전개하는 방식을 보며,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활동한 경험이 화면에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시간성을 끌어들인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달리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만약 순수 회화를 전공했다면 접근법이 달랐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창작의 알고리즘들이 있는데, 세계관을 만들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론이 지금 내가 작업하는 데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물리적 시공간의 의미가 크지 않고 내러티브의 흐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연결하는 측면이 그런 것 같다.

본인의 장애는 작품에 어떻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가?

조현병은 발병의 원인 자체가 사회적인 모순을 담고 있는 등 사회·환경적인 요소가 강하다. 증상도 그 모순을 모두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증상이 작품의 서사로 드러난다. 다른 세계와 소통하는 사람들은 보통 무언가를 하는데, 그것은 생존의 수단인 동시에 자신의 실존에 대한 시그널이기도 하다. 그림이 내겐 그런 것이고, 환각의 경험들은 내 작업의 모티브이다. 이 세계랑 내가 연결되어 있고 소통되어야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증상이 완전히 없어진다면 창작을 지속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같은 장애를 가진 작가들에게 어떤 정책적인 지원이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좋은 제도들이 있다고 했지만, 당사자에게 꼭 필요한데 미진한 부분은 없는가?

현재도 좋은 지원이 있지만 모두 유한한 것들이다. 지속 가능한 지원이 필요하다. 정책 당국이나 일을 추진하는 분들이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펼쳐 예술 영역에서 인재들을 키워내길 바란다. 예술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활동이 단절된 장애인에 대한 도움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장애 예술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싶지 않다. 내 그림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평가 절하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이런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노력과 장애예술인이 공정하게 지속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신장애 작가들과 단체전도 개최했다. 앞에서 언급한 공정한 평가와 인식 개선의 의지가 전시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단체전을 하는 이유는 정신장애 예술인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함이다. 그래서 참여 작가들에게 완성도가 있는 작품으로 관람객을 만나자 했는데, 모두 한 마음이었다. 우리도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신장애 예술인 작품전’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표시했는데,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작품을 보는 것, 그 자체가 인식 개선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모순적이긴 하지만 필요한 측면도 있다.

앞으로 작가로서 계획과 꿈을 말해달라.

정신장애인은 수명이 짧은 편인데,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앞으로는 전업으로 작업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작품이 나를 치유했듯 작품을 보는 관람객에게도 치유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예술의 아주 근원적인 존재 이유가 치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선보여 치유와 공감을 얻고 싶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부끄럽습니다.” 작품을 내보이며 이정하 작가는 성숙한 작가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수줍게 말했다. 그녀의 삶과 경험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화폭은 분명 본인 스스로 치유의 과정이자 사회적·구조적 모순을 조명하고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를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늦었다 겁내지 않고 진지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이정하 작가의 모습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했다.

  • 까만 바탕의 파란색 물결 가운데에, 긴 머리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가슴에 큰 토끼를 품고 있다.

    〈12번째 인류〉, 80.3×116.8cm, 캔버스, 아크릴/유화, 2023

  • 석양이 지는 판잣집 골목길에 한 아이가 한 손에 긴 빗자루를 잡고 걷고 있다.

    〈퇴근길에서〉, 72.7×116.8cm, 캔버스, 아크릴/유화, 2023

  • 사과를 든 토끼, 승무를 추는 사람, 우산, 고양이, 펭귄 등 다양한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다.

    〈진실의 사과 프로젝트〉, 130.3× 166.2cm, 캔버스, 유화, 2023

이정하

미술작가, 인권운동가. 20대 후반 조현병 진단을 받고 급성기와 회복기를 거듭하며 조현병과 살아가는 중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했다. 2009년 온라인 정신장애 당사자 카페 정모에서 출발해 2013년 ‘문화예술협동조합 파도손’을 거쳐 2017년 ‘사단법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을 설립했다. 자신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동료상담과 상담가 양성, 절차조력, 자조모임 등을 꾸리고 있고, 동료 정신장애인의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관련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파도손 그룹전 《정신장애인의 그림을 읽다, 시대를 보다》(2022), 《정신장애예술인 5인 작품전 – 신의목소리》(2023) 등을 열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홈페이지

심지언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 비엔날레 등에서 전시기획자로 근무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운영위원(2022-24), 해외문화홍보원 월간지 [KOREA] 기획·편집 자문위원(2021) 등 공공기관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정책과 미술시장, 국제교류 등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시각예술 전문 매체인 월간미술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며 동시대 미술 현장을 기록·진단하고 있다.
rachel.monthlyart@gmail.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이정하

2024년 7월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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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6 09: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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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을 극복하고 다시금 작품활동을 하는 이정하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전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07-05 07: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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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신장애, 조현병에 대해 듣기도 하지만 막연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는데, 인터뷰를 통해 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정하 작가님의 작품과 파도손 활동도 인상적이었고, 사려깊고 깊이 있는 인터뷰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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