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꽹과리·장고·북·징을 들고 모였다. 사물놀이를 통한 음악치료 모임이었는데, 그 만남이 그룹 ‘땀띠’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국 경연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으며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스(2011), 일본(2012), 뉴질랜드(2018) 공연도 다녀왔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땀띠는 현재까지 멤버 교체 없이 고태욱, 박준호, 이석현, 조형곤이 활동 중이다. 연간 평균 공연 횟수는 20~30회, 많은 해는 40회를 웃돈다.

2024년 5월 31일과 6월 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 땀띠의 20주년을 돌아보는 무대가 펼쳐졌다. 땀띠의 멤버들은 욕심이 많다. 이름부터 ‘땀띠’이지 않은가. 남들 쉴 때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것. 그래서 땀띠 나도록 해보자며 지은 이름이란다. 이번 무대는 2020년에 발매한 2집 음반 《희망의 여정》에 수록된 〈봄소리〉 〈여름풀소리〉 〈땀띠풍류〉 〈텔레파시〉 〈지금 우리 이곳에〉를 비롯해 17곡을 선보였다. 그들의 공연을 틈틈이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 공연이 가장 큰 무대였다. 계단식으로 쌓은 형태의 무대로, 층마다 여러 악기가 놓여 있었다. 멤버들의 ‘땀’방울을 비추는 조명도 여느 때보다 화려했다. 곡과 곡 사이로 멤버들의 이야기와 사연을 들려주는 김수진의 내레이션, 샌드아트를 활용한 영상(촬영·편집 윤유성), 양희은과 김덕수의 축하 메시지 영상이 나왔다.

‘땀’과 함께 진화하는 소리의 ‘띠’

첫 문을 연 〈소원굿〉은 전통 사물놀이와 멤버들의 구음(口音)이 함께 했다. 구음의 발음이 어눌해도, 이젠 관록이 쌓인 멤버들은 흥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분명히 안다. 무대 전환을 놓고 영상이 펼쳐진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조형곤의 메시지를 샌드아트 영상이 풀어냈다. 조형곤은 공연마다 징을 도맡는다. 가장 묵묵한 멤버다. 하지만 공연마다 열두발 상모로 관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땀띠의 간판스타다.

땀띠는 전통 사물놀이로 시작했지만, 월드뮤직그룹 공명(이하 공명)과 함께 진화 중이다. 이번 공연에서 해금을 연주한 김수진이 땀띠를 태동시킨 ‘어머니’라면, 공명의 송경근은 땀띠의 ‘아버지’와도 같다. 2013년, 창단 10주년 공연을 준비하던 중 김수진의 소개로 송경근은 땀띠와 인연이 닿았다. 〈땀띠 설장구〉에 이은 〈봄소리〉와 〈공간(공間)〉은 송경근과 공명이 땀띠에게 물려준 냄새가 물씬한 음악이다. 〈봄소리〉에서 땀띠는 공명의 멤버들(강선일‧박승원‧송경근‧임용주)과 함께했고, 〈공간(공間)〉에서는 디저리두 등 공명이 사용하는 신비한 민속악기들을 연주했다. 땀띠와 함께하는 공명은, 그 순간만큼은 ‘월드뮤직그룹 공명’에서 ‘휴머니즘 그룹 공생’이 된다.

땀띠를 둘러싼 이러한 인연들을 알게 될 때, 그들의 공연마다 사이를 수놓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는다. 이국적인 소리를 선사한 〈공간(공間)〉에 이은 샌드아트 영상 〈-‧+‧×‧÷〉에서 땀띠는 말한다. “우리는 부족했지만(-), 서로 만나고 더하니(+), 그 힘은 곱하기(×)가 되었고, 나눔(÷)이 되었습니다”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객석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휘모리〉에서 땀띠는 리코더를 불며 특수 악기 ‘공명’을 신나게 연주했다. ‘공명’이라는 이름의 악기는 그룹 공명이 대나무로 개발한 특수 타악기이다. 이어진 〈공명유희〉에서 공명이 나와 땀띠에게 전수한 흥겨운 울림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공명이 그들에게 전수한 것은 일인다역의 역할론일 것이다. 고태욱은 기타와 리코더 등을 맡고, 박준호도 장구와 북을 비롯해 리코더, 심벌즈, 밤드럼, 카혼, 공 등을 맡는다. 여러 악기는 그들의 ‘날개’를 이루는 깃털과도 같다. 이어진 〈텔레파시〉 〈여름풀소리〉는 땀띠의 다재다능한 연주력을 보여준 곡이었다.

땀띠 무대의 노름마치란?

땀띠는 이제 제대로 놀 줄 안다. 이어진 〈매우 쳐라〉 〈놀자〉 〈땀띠연희〉는 이들이 날린 ‘흥’의 직격탄이었다. 그들이 쌓은 20년은 함께 놀 줄 아는 ‘관객 형성 20년’이기도 하다. 빨라지는 악기의 박자가 살짝 어긋나도 땀띠는 능글맞게 웃음을 보내고, 관객은 박수로 격려한다. KBS ‘생활 뉴스’에서 앵커로 활동한 이석현의 입담도 업그레이드되었다.

전통연희판을 각색한 〈땀띠연희〉에서 고태욱은 버나를 돌리며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이 판의 마지막을 매번 장식하는 이는 ‘노름마치 조형곤’의 열두발 상모놀이다. 노름마치란 그가 나타나면 놀이(놀음)를 끝내는(마치는) ‘끝판왕’을 뜻한다.

그런데 땀띠 공연의 끝판왕 노름마치는 따로 있다. 바로 땀띠 멤버의 어머니들이다. 송경근은 과거에 필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 ‘노름마치’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들의 모습 속에서 저는 ‘헌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훌쩍 커버린 자녀의 몸이 힘에 부쳐 발을 잘못 디뎌 넘어져도 가장 먼저 일어나 아들을 살펴보는 어머니들이셨어요. 아들들이 기뻐하면 어머니들도 기뻐하셨죠.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 땀띠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송경근은 땀띠의 공연 제목이 ‘도약’이 된 것에 대해 “힘겹게 아들을 키우고 공연을 준비하는 매번의 과정이 당신들에게는 ‘도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도 말했다. 삶에서는 아들이고, 무대 위에선 예술가인 그들을 키워내는 4명의 노름마치. 마지막 곡 〈지금 우리 이곳에〉에서 그들은 멤버들의 뒤에 서서 노래를 함께 불렀다.

지금까지 내가 예술을 통해 받은 감동의 출처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유명세 있는 음악가들의 무대, 혹은 화려한 기교 등이다. 하지만 이날의 감동적인 공연을 보며 이 감동의 출처가 무엇인지 헤아려 보았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정의 내려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장애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땀띠 날다 20년

사물놀이 땀띠·국립극장｜2024.5.31.~6.2.｜국립극장 하늘극장

사물놀이 땀띠는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뇌병변장애 등 서로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청년연주자 4명으로 구성된 국악연주단이다. 창단 20주년을 맞이하며 장애인 연주단체로서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여정을 음악으로 이야기한다. 음악감독 송경근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월드뮤직그룹 공명과의 협연, 해금, 건반, 첼로 등 다양한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공연이다.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2023-24’의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공연정보
· 국악방송 〈국악무대〉 녹화방송 풀영상(2024.6.17.)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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